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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Jul 13. 2022

운명공동체 엄마와 딸, 딸의 딸

오로지 여성이기에, 특별한 엄마와 딸.

이번 주부터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마철이면 친정엄마의 겨울 호박전과 밥알 인절미가 생각난다. 타닥하고 창문을 두드리는 여름 비 소리처럼 기름을 두른 팬 위에서 샛노란 겨울 호박은 바싹하게 익어갔다. 어릴 적 부모님은 농장을 운영하셨다. 말 그대로 산골짜기에 집이 있었기에 평일에는 할머니 댁에서 학교에 다녔다. 주말이면 집에 오는 딸아이를 위해 엄마는 늘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만들어 두셨다. 목요일 밤이면 안부와 함께 먹고 싶은 음식을 물어보는 엄마의 전화를 놓칠세라 어린것은 할머니 댁 까만색 다이얼 전화기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장대비가 내리던 어느 여름밤, 하굣길 아버지의 차 안에서 깜박 잠이 들었던 나는 엄마의 조심스러운 깨움에 눈을 떴다. 검은색 교자상에는 엄마가 갓 지은 찹쌀밥을 절구로 설피 찧어 콩고물을 둘러 만든 밥알 인절미가 놓여있었다. 그 맛은 잊었으나 행여나 입맛에 맞지 않을까 연신 어린 딸의 표정을 살피던 친정엄마의 얼굴은 또렷하다. 사랑에도 색이 있다면 나에게 친정엄마의 사랑은 검은색이다.      


한 가정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지내는 일상에서 친정엄마의 모습을 종종 마주한다. 그녀의 삶과 평행이론처럼 다른 듯 닮은, 공통의 분모를 발견하는 일은 경이롭다. 친정엄마는 다섯 살 터울의 남매를 키웠다. 워낙에 친오빠에게 귀여움을 받았던 나는 첫째가 아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바람처럼 첫째는 아들, 둘째는 딸을 낳았다.      


“엄마, 겨울 호박전은 어떻게 부치는 거야?” 둘째를 출산한 눈 내리던 겨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겨울 호박을 채 썰어서 물 없이 부쳐야 하는데…. 그런데 그런 걸 왜 묻니? 사부인께서 어련히 알아서 하실까.”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복직을 준비 중인 줄로만 알았던 딸의 물음에 친정엄마는 말이 없었다.


어미가 제 자식을 키우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친정엄마는 늘 죄인이었다. 아이에게 엄마가 세상 전부인 시기에 어린 딸을 조부모에게 의탁했다는 부채감과 더불어 자신은 어린 손주와 손녀를 돌볼 건강상의 여력이 안 된다는 자격지심이 가뜩이나 왜소한 그녀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미 삼아 본 공무원 시험에 덜컥 합격했던 친정엄마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잔병치레가 잦은 나를 건사하느라 직장을 그만두었다. 자꾸만 가난해지던 가정형편에 좋아하는 공부를 그만두고 딸은 공무원이 되었다. 자신과 똑 닮아 입덧까지 심한 딸이 유산을 경험하고, 승진을 목전에 둔 채 휴직을 거듭하는 것을 보며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닮는 것이냐고 한숨지었다. 아이는 저절로 크는 줄로만 아는 사돈에게 거듭 딸아이의 처지를 읍소했건만 화답받지 못함에 그녀도, 나도 울었다.      


딸아이가 백일이 될 무렵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대거 발생했다. 육아휴직을 연장하고 서울을 떠나 남편의 직장이 있는 도시로 거주지를 옮겼다. 남편이 출퇴근을 위해 거리 위에서 보냈던 3시간은 고스란히 가족의 몫이 되었다. 그곳에서 보낸 2년은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일과를 마무리하는 식구로의 삶, 그 자체였다.      


주 양육자가 할머니였기 때문이었을까. 나에게 부모와 자식이 함께 식탁을 마주하는 행위는 각별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던 시절에는 결혼은 했지만, 생활은 없었다. 그래서 돌아서면 밥을 해야 했던 ‘돌-밥’ 코로나의 시기도 싫지만은 않았다. 되려 빗줄기가 시원하게 내리는 여름날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발-간 오징어 볶음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전을 소쿠리 가득 굽는 일이 즐겁기까지 했다. 그날 날씨에 어울리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사진을 찍어 남편의 휴대전화로 전송했다. 퇴근길에 그의 손에 들려올 막걸리를 기다리는 시간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복직을 앞두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삿짐 속 겨울 호박과 요리책을 보며 친정엄마를 떠올린다. 여전히 요리책 사기를 좋아하고,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꼼꼼히 레시피를 메모하는 엄마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나는 취미로 요리 교실을 다녔고, 애청하는 드라마는 없어도 유튜브로 요리 채널을 즐겨 본다. 내 이름의 한자어를 풀이하면 ‘기쁨을 잇는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친정엄마에게 나는 늘 기쁨이었다. 나처럼 겨울에 태어나 괜스레 나이만 먹은 4살 딸아이에게 “누구 딸이야?”라고 물으면 온 얼굴에 보조개 꽃을 피운다. “엄마 딸”하는 모습이 마냥 천진하고 사랑스럽다. 딸아이도 이름처럼 벌써 ‘곱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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