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게임과 테마게임이라니...... 보드게임 계에서는 한참이나 유행이 지난 주제인 건 맞다. 누가 요즈음 유로 게임이니 테마게임이니 나누냐고 말이지. 요즈음에는 둘 다 섞이는 추세다. 유로라고 테마가 없지 않고 테마라고 전략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좀 나눠본다.
그럼 유로게임이란 뭐고 테마게임이란 뭐냐?
유로게임이란?
우리가 흔히 전략게임이라 부르는 그것이다. 이 어원은 보드게임의 종주국이라 불리는 독일이나 유럽에서 나온 게임들을 일컫는 말이다. 유럽에서 나온 보드게임들은 그에 관한 뚜렷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요즈음에는 꼭 그렇지도 않지만 예전에 나온 유로게임들은 테마보다는 메커니즘을 더 중시했다.
즉, 테마는 거들 뿐이었달까?
특히 이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작가 중 한 명은 '스테판 펠트'이다. '버건디의 성'이나 '트라야누스' 같은 걸출한 보드게임을 만든 작가이지만 이 작가의 게임에서는 하나 같이 테마를 느낄 수가 없다. 그럼 무슨 재미로 하냐고? 메커니즘 돌리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스테판 펠트의 '버건디의 성'
스테판 펠트의 '트라야누스'
또 그 재미에 빠져들면 정말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특히 3점 후반에서 4점대 전략게임들을 하기 시작하면 정말 열어서는 안 될 뭔가를 연 느낌이 든다. 전략게임들은 주로 퀴즈를 풀고 퍼즐을 푸는 그런 느낌을 준다. 그래서 정말 재미있다.
그러면 테마게임이란 무엇이냐?
예전에 테마게임들은 미국에서 주류로 나오기 시작한 보드게임들을 일컬었다. 요즈음 정말 유명한 '글룸헤이븐'이나 '크툴루, 죽음마저 죽으리니', '광기의 저택', '디센트 : 암흑의 전설' 등이 다 이런 테마게임의 일종이다.
크툴루, 죽음마저 죽으리니
글룸헤이븐
그런데 솔직히 옛날에 나온 테마게임들은 테마를 부쩍 살리느라 메커니즘이나 밸런스에 엄청난 신경을 쓰진 않았다. 게다가 그 테마들을 다 살리다 보면 나오는 어마어마한 잔룰들은..... 어우, 생각만 해도 엄청나군.
옛날에 '아컴호러 2판'을 한 적이 있을 때가 떠오른다. 이 게임은 크툴루 세계관을 바탕으로 나온 게임이었는데, 룰북만 몇 십 페이지였고 잔룰이 너무 많아 룰마를 했던 사람이 끙끙거리던 기억이 선명하다.
* 크툴루란 러브 크래프트라는 작가가 쓴 소설에 나온 고대신을 뜻한다. 러브 크래프트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고 저항할 수도 없는 공포에 대해 다루는 소설을 썼는데 이를 '코스믹 호러'라 부른다고.
그리고 보드게임들을 찾아보면 크툴루 테마들을 아주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러브 크래프트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이 풀렸기 때문이다!
언제나 뒤에는 이런 어른들의 사정이 있게 마련이다.
솔직히 이 둘은......
예전에는 서로를 욕했던 적도 있었다. 테마게이머들은 테마도 느껴지지 않는 유로게임이 딱딱하고 재미없다며 욕했고, 유로게이머들은 테마게임들을 아메리트레쉬라 부르기도 했다. 잔룰만 많고 깔끔하지도 않으며! 테마에만 치우쳐 메커니즘을 신경 쓰지 않았다며 그렇게 부른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그렇지도 않다. 테마게임에도 메커니즘과 전략이 있고 전략게임에도 테마가 있기 때문이리라. 테마와 메커니즘이 찰떡같이 융합된 하이브리드 유로는 찬사를 받기도 하는 시대가 왔다.
테마와 전략이 잘 녹아 있는 하이브리드 유로게임 '업세션'
물론 그 전에도 빡쎈 전략이지만 그 안에 테마를 잘 녹여내는 비딸 라세르다 같은 작가가 있긴 했지만 내가 그 작가 게임을 해본 게 하나 밖에 없으므로 우선은 그냥 넘어가도록 한다.
촌스럽다며 욕을 먹지만 아무래도 앞으로 또 유로와 테마게임은 계속 나누어질 것이고 그렇게 불릴 것 같다. 뭔가 더 좋은 대체 단어가 나올 때까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