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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02. 2018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추천하는 내 여행의 순간들(2)

찰나의 조각들

참 신기하다 기억이란 건. 특히 여행의 기억이란 건. 문득 스쳐 지나갔던 작은 알맹이가 선명하게 기억나기도, 전혀 생각이 안 나다가 잠시 시간을 가지면 어렴풋하게 떠오르기도. 여행의 순간들은 그렇게 생각을 계속할수록 쪼개진다. 그래서 여행은 찰나와도 같다. 아주 작은 순간이 이상하리만치 크게 와 닿아 그 느낌으로 남아버리는 것. 그런 신기한 공식이 성립되는 것.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Openbare Bibliotheek Amsterdam 중앙도서관
도서관 내부

유럽 여행 중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건 8월의 한가운데였다. 가장 크게 달랐던 건 역시나 날씨! 유럽 특유의 강한 햇빛에 정신 못 차리던 나는 서늘한 이곳에 와서 된통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덕분에 첫날은 강제 휴식, 둘째 날의 아침이 밝았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꼭 들리는 곳이 있다. 서점이나 도서관이다. 그 나라의 언어로 쓰여있는 책을 보면 내가 외국에 있다는 것이 괜스레 실감 난다. 나라마다 도시마다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그 지점을 구분하는 재미도 있다. 이름도 긴 암스테르담 중앙도서관은 중앙역 근처에 있다. 도보로 충분히 걸어서 이동 가능한 거리이다. 내가 간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우중충한 날씨였는데 그 날씨와 매우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실내는 조용하고, 넓고, 쾌적하다.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모든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그리고 신기했던 건 도서관 안에 현미경이 있었다. 현미경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는데, 정작 그곳 사람들은 무덤덤하게 이용하더라.


올드보이 DVD

DVD 코너에서는 우리나라 영화들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숨어있던 애국심이 솟아오르며 찡해지던 순간이다. 도서관 맨 꼭대기에 가면 뷔페식 푸드코트와 함께 암스테르담의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는 테라스가 있다. 나는 여기서 먹어보지는 못했는데, 꽤 맛있게 생겼다. 비 오는 날 운치 있는 암스테르담을 내려다보며 먹는 브런치랄까. 긴 여행을 하는 중이라면, 그 지나가는 찰나 이곳 중앙도서관에서 여유롭게 현지인 코스프레를 해봐도 좋겠다.



베트남 하노이 - 땀꼭
땀꼭투어의 시작점

처음에 하노이는 나에게 단지 라오스를 가기 위한 경유지였다. 당시 라오스행 비행기표가 비쌌다. 그래서 특가로 뜬 하노이 비행기표를 구매하고, 24시간 슬리핑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 하노이는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여행지가 되었다. 다 좋았지만 특히나 이 땀꼭 투어가 그 기억의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하노이 하면 세트로 묶어서 따라오는 여행지가 있다. 바로 하롱베이이다. 땀꼭은 이 하롱베이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땀꼭만으로도 충분하다. 충분히 웅장하고 충분히 아름답다. 땀꼭은 개별적으로 이동하기 힘들어 나는 숙소 옆에 있는 현지 여행사에서 투어 신청을 했다. 사실 이 현지 여행사는 만능이라서 나중에 라오스 비엔티안으로 넘어가는 슬리핑 버스 티켓도 이곳에서 구매했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쁜 베트남 사람들이 함께하니, 이곳에서 많은 정보를 얻어가는 것도 좋겠다.


땀꼭 투어는 보통 호아루 투어, 땀꼭 보트 투어, 자전거 투어 3단계로 이루어진다. 호아루는 베트남의 옛날 수도였다고 한다. 보트 투어는 발로 노를 저어 주시는 뱃사공(?) 분이 배마다 계시는데 나중에 1달러 정도의 팁을 요구한다. 자유여행 중 이렇게 하루정도 현지 투어를 끼워보는 것도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아, 하노이에 간다면 백종원 쌀국수로 유명한 <퍼지아쭈웬>은 꼭 가보길 바란다! 함께 파는 빵을 사서 국물에 찍어먹어야 한다. 이게 바로 베트남 쌀국수구나 느낄 수 있다.



영국 런던 - 회전목마
밤에 가면 더 예쁘다

런던에는 아주 크고 비싼 런던아이가 있다. 그리고 그 런던아이 옆에 이 회전목마가 위치해있다.


나는 여행을 하면 늘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룸에 묵는 편이다. 학생 신분으로 여행을 하다 보면 늘 모아가는 아르바이트비에 한계가 생기고, 경비를 많이 가져가려면 여행 가는 횟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늘 '여행은 자주, 대신 가난하게' 그게 나의 여행 모토였다. 게스트하우스, 특히 도미토리룸의 장점 중 하나는 다른 여행자들과 부딪치는 횟수가 많고 그러다 보면 여행책에 나오지 않는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거다. 이 회전목마는 원래 유명한 듯했지만 당시 나는 모르던 곳이었다. 숙소에서 만난 여행자 친구가 아주 재밌는 회전목마가 있으니 꼭 타보라고 추천해줬다.


회전목마를 가게 된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런데 나의 인생 스테이크 집인 <Flat Iron>! 이곳 웨이팅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기 위해 근처에 있던 회전목마를 찾아가게 되었다. 대략 2유로 정도 했던 것 같고, 티켓이 아주 귀여웠다. 그리고 정말 빠르고 정말 재밌었다. 더불어 빅벤이 아주 잘 보이는 명소다.


<Flat Iron> 역시 꼭 가보길 바란다. 누가 영국 음식이 맛이 없다 했는가? 이미 한국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이곳은 핸드폰 번호를 받아 웨이팅이 끝날 때쯤 문자로 알려준다. 밖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런던 만세!



스페인 바르셀로나 - Passeig Maritim 해수욕장

바르셀로나 하면, 바르셀로네타 해변이 제일 유명하다. 실제로 그곳은 365일 관광객들이 넘치는 곳이다. 나도 원래 그곳에 가려했다. 그런데 내 귀차니즘이 그냥 지도를 펼쳐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무조건 찾아가 보게 하였다. 사실 지도에 보이는 바다가 바르셀로네타 해변인 줄 알았다.


지금은 구글 오프라인 맵으로 편하게 길을 찾아다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호스텔에서 주는 종이지도를 들고 여행을 다녔다. 그때는 참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 장소를 많이 만났다. 길을 헤매서 힘든 것이 아니라, 그 도시 구석구석을 들어가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래서 나중에 그 모든 곳이 머리에 그려지는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혹시 들어는 봤나? 바르셀로나에도 트램이 있다! 바르셀로나 동쪽 제일 밑으로 내려가 보면 해변까지 이어지는 트램이 있다. 이 트램을 타고 제일 마지막 정류장에서 내리면 그곳이 바로! Passeig Maritim 해수욕장이다. 처음에 진짜 당황했던 건 그 해수욕장의 유일한 관광객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진짜 현지인들이 찾는 해변이어서 온통 여가시간을 즐기고 있는 가족들이 가득했다. 그들도 이곳까지 찾아온 내가 신기한 듯 보였다.


다음날, 나는 여행 중 만난 친구들과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내 노란 튜브를 들고 이곳을 다시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수영하느라 모래 위에 놓아둔 우리 짐이 도둑맞지 않을까 자기들이 더 걱정하고, 시내까지 다시 돌아가는 길을 잃지 않을까 함께 길을 찾아주고, 들고 있던 간식을 나눠주고, 헤어지는 길은 비쥬로 인사해주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결국 나는 바르셀로네타 해변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내 귀차니즘이 너무 이뻐 보일 만큼 이곳이 넘치도록 좋았다. 그 날의 날씨, 바다, 사람들, 그리고 나까지 말이다.



포르투갈 리스본 - 벨렘 지구

리스본의 시내 중심을 지나면 외각에 벨렘 지구가 위치해있다. 벨렘 지구에서 제일 유명한 건 에그타르트 집 <Pasteis de Belem>이다. 내가 포르투갈 여행을 결정하게 된 이유에 이 에그타르트의 지분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너무 기대하지 말길 바란다. 홍콩의 에그타르트도 그랬지만 기대하는 만큼 실망도 크다. 물론 맛있다. 바삭하고 촉촉하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나에게 벨렘 지구가 특별했던 건 당시 묵고 있던 호스텔에서 자전거 투어를 신청해 벨렘 지구에 갔기 때문이다. 리스본 시내 중심에서 벨렘 지구까지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이다. 그런데 해안길을 따라서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자전거 투어로 안성맞춤이다. 이동하면서 본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무엇보다 나를 스치던 바람과 반짝이던 햇빛을 잊을 수 없다.

 

LX FACTORY 입구

<LX FACTORY>는 공장단지를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만들어놓은 곳이다. 이곳에는 각각의 개성과 의미를 담은 그라피티와 상점들이 있다. 특히 <Livraria Ler Devagar>이라는 서점이 있다. 서점 덕후인 나는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유레카를 외쳤다. 2층에 올라가면 오르골 같은 아기자기한 기계장치들이 있는데, 귀여운 할아버지 두 분께서 그 원리와 이유를 직접 설명해주신다. 설명을 다 들으면 자유롭게 팁을 내야 한다. 나는 가난했던지라 5유로 좀 안되게 동전을 탈탈 털어서 냈던 것 같다. 벨렘 지구는 리스본 시내 중심과는 조금 다른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다. 조금씩 다르지만 다 같은 좋음으로 여전히 마음을 울리는, 포르투갈은 그런 곳이다.



싱가포르 - 티옹바루 거리

싱가포르는 덥고, 더 덥고, 더더 더운 날씨로 나뉜다. 그래서 쨍쨍한 한낮에 걸어서 여행을 하는 것이 매우 힘들지만, 그럼에도 이곳 티옹바루는 걷고 또 걸으며 여행해야 하는 곳이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예쁜 골목들만 모아놓고 누가누가 더 예쁜지 마치 경쟁하는 것 같다. 티옹바루 거리는 파란 하늘과 하얀 건물과 초록 나무의 조화로움이다. 이곳이 싱가포르인지 미국 서부의 어느 주택가 골목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유럽에 와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티옹바루 거리에서 제일 유명한 건 그렇게나 맛있다는 티옹바루 베이커리와 그렇게나 아기자기하다는 <Woods in the books> 서점이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마치 과자봉지 속 질소 포장처럼 부풀려진 곳이다. 그저 이 아름다운 거리를 마냥 걷다가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잠시 쉬어가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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