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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세상은 내편 Oct 23. 2023

우리 말 말고 글로 이야기해 볼까요?

글을 써서 제발 내 삶의 응어리를 풀고 싶어요


4월에 시작한 글쓰기는 5월, 6월 매달 순조롭게 이어졌고, 감사하게도 고정멤버가 생기고 인원도 늘어났다.


수강생들에게 내가 선생님이듯 내게 수강생들도 선생님이다. 내가 글쓰기는 조금 더 경험해 봤을지 모르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은 그분들에게 배운다. 그래서 앞에 서 있는 시간보다 선생님들 곁에 서서 듣는 시간이 많았다.


'나를 깨우는 글쓰기'는 잠시 멈추어 질문하고 나를 들여다보고 글쓰기로 답하는, 내면과 대화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매 시간 수업시간에 질문이 주어지고 짧은 시간 동안 생각하고 글을 쓰고 글을 나눈다. 때로는 숙제를 내기도 했지만 수업시간에 되도록 많이 쓸 수 있도록 했다.


자신에게 집중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일은 일부러 작정하고 하지 않으면 쉽지 않다. 모두가 너무 바쁘다. 고작 일주일에 90분이지만 글쓰기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얕지 않다. 자신이 살아온 날을 돌아보는 질문부터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의 주제에 대해 말하고 때로는 그날의 주제와 관련된 담백한 글을 책에서 찾아 읽어 준다. 그리고 질문을 드리고 10분 정도의 글쓰기 시간을 준다. 사각사각 여기저기 종이에 연필이 춤을 추는 소리가 좋다. 집중해서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고,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멈추지 않고 연필을 계속 움직이기도 하고, 몇 글자 쓰고 멈추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자! 이제 쓴 글을 읽어 볼까요? 공개하고 싶지 않다면 써 본 느낌만 이야기하셔도 좋아요."

어릴 때의 추억을 꺼내 보는 질문에는 60년이 지나도 생생히 기억하는 분도 계셨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시대의 이야기는 낯설지만 옛날 동화 같았다. 나를 포함 삼사십 대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목욕을 큰 통 밑에 불을 때며 했다고요?" 하고 반응을 하면 70대 은희 님은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고 70대 강수지 님도 옆에서 거들었다. 70대 장동건 님은 언제나 조용한 미소로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삶을 글로써 응어리를 풀고 싶다던 강수지 님은 글을 읽다가 자꾸 말로 설명을 하셨다. 그리고는 민망하셨는지 하소연을 하셨다.

"제가요. 글쓰기가 정말 풀지 못한 숙제예요. 글만 쓰려고 하면 술술 안 써지고 마음에 있는 게 안 나와요. 말로는 다 하는데요. 이게 문제라니깐요!"

그 답답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머리에서 생각하는 것들을 글로 쓰려면 정리가 되어야 하는데 쌓여있던 이야기가 한꺼번에 나오려 했다. 거기다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이라 글에 대한 기대치와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이 합쳐져서 스스로 검열이 심한 경우다.


"선생님, 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리고 지금 쓰신 글도 충분해요. 쓰신 글로 읽어 주셔도 충분히 이야기가 전달되는걸요. 남 눈치 보지 않아도 돼요. 지금 이 시간 짧게 쓰는 글은 완성형이 아니고 어디 보이는 글도 아니고요. 조금씩 쌓아가며 풀어가면 되고요. 정말 충분히 잘 쓰셨어요. 말로 설명하지 말고 이 시간엔 쓴 글로 읽을게요."


진심이었다.


그때부터 강수지 님이 글을 읽을 때 옆에 갔다. 말로 설명하려고 할 때 쓴 글을 읽도록 했다. 잘 썼기 때문에 칭찬했고 비슷한 연령대의 이은희 님이  장난스레 "잘 쓰면서 그래요? 내가 기가 죽네." 하면 모두가 웃었다.

글쓰기 동지들은 강수지 님을 항상 격려해 주었다.


강수지 님은 어릴 때 넘치게 유복하게 자라 무언가를 애써서 해야 할 필요도 없었고 공부도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이 맺어준 부잣집에 시집을 갔고 호된 시집살이를 겪다가 가세가 기울면서 가장이 되어 혼자 벌 자식들을 키운 삶이었다. 뒤늦게 책을 읽고 도서관을 다니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알았다고 했다. 어릴 때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며 결혼 후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진짜 삶을 배운 것 같다고 하시는 분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풀지 못한 응어리를 죽기전에 글로 써서 풀고, 자식들에게 사랑하는 진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강수지 님의 글은 조금씩 조금씩 길어졌고 피하지 않고 글을 읽어 주시게 되었다.

"선생님, 제가 지금까지 숱하게 글쓰기 수업을 들었어요. 출석은 백 프로 하는데 발표를 하거나 숙제는 한 번도 못했어요. 그런데 이렇게라도 쓰고 읽을 수 있는 것도 너무 신기해요. 이렇게 계속하면 언젠간 술술 쓰게 되겠죠?"

예전에 글쓰기 수업을 듣고 책을 많이 읽었던 것들이 이미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언제고 쓸 수 있는 분이었다. 글쓰기 동지들의 응원과 격려가 큰 힘이 되었고 이분은 시작이 정말 반이라고 생각된다. 차곡차곡 함께 하면서 글쓰기의 자유를 맛보실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나야말로 글쓰기의 자유를 맛보고 있는지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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