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지하철과 강남 아파트

by 서승민

뉴욕에 갔을 때였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시간에 지하철을 탔다. 겨울이었다. 객차 안에는 두꺼운 패딩이나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말소리는 거의 없었고 고개를 떨군 채 졸거나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는 얼굴들이 이어졌다. 하루가 이제 막 시작되는 시간인데도, 피로는 이미 충분히 쌓여 있는 듯 보였다.


나는 그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출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날의 일정은 느슨했고 내려야 할 역도 급하지 않았다. 같은 칸에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지고 있는 그 하루의 무게를 함께 지고 있지는 않았다. 지하철을 타기 전엔 상쾌하던 아침 공기가 냉랭해졌고 가벼웠던 발걸음은 무거워진 마음을 나르느라 느려졌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풍경도 떠올랐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방 하나에 네다섯 명이 함께 살기도 한다. 새벽이면 인력을 실어 나르는 픽업트럭 여러 대가 집 앞을 지나간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주고받는 말소리가 얇은 벽을 타고 흐른다. 공간은 늘 꽉 차 있다. 스쿨버스가 아이들을 태우고 내릴 시간에는 아파트 단지가 시끌벅적해진다. 한 명이 버스를 오르내릴 때마다 그 아이의 형제자매들이 거리로 나와 뛰어다닌다. 스쿨버스가 떠난 뒤에도 차도는 놀이터가 되고 지나가던 차들은 멈칫거린다. 길 옆 잔디밭에는 줍지 않은 개똥이 가득하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느슨하다기보다는 압축돼 있다.


같은 도시 안에도 전혀 다른 밀도의 동네가 있다는 걸 안다. 몇 분의 운전만으로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자연스럽게 혹은 치밀하게 걸러진 사람들만 남아 있는 곳이다. 바깥에서는 안이 잘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는 방 하나에 여러 명이 모여 살 필요도 없고, 차를 세워두고 유리창을 걱정할 이유도 없다. 같은 시간 같은 도시지만 서로 다른 하루가 흘러간다.


이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이곳에서 공기의 밀도를 느낄 때면 한국의 아파트 가격이 따라붙었다. 평균 소득으로 설명되지 않는 가격표들, 성벽처럼 높아진 단지들. 안쪽을 향해 점점 닫혀간다. 고개를 낮추어 눈앞을 바라보면, 만원 지하철과 놓친 광역버스에 이미 진이 다 빠진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편도 두 시간이 걸리던 출퇴근길에 무수히 마주쳤던 무표정의 얼굴들이 겹쳐진다.


사람 사는 사회이기 때문에 닮은 부분들이 많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단어들은 늘 엉킨다. 양극화, 계층, 공정, 불평등, 수저, 학벌, 일자리, 능력, 출산율, 사교육 같은 말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나의 이야기인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는 말은 따뜻하면서도 냉정하다.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으며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마주할 때는 그 말이 위안이 되지만, 같은 땅 같은 도시 안의 너무 다른 풍경을 지나칠 때면 과연 우리가 똑같이 산다고 말할 수 있을지 망설여진다.


무엇이 나의 선택이었고 무엇이 나의 조건이었는지 끝내 구분되지 않는다. 체념과 분노, 관조와 투지 사이에서 말을 고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뚜렷한 말로 어떤 변화와 개선을 주장하기에 앞서, 내겐 이 복잡한 풍경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일 자체가 아직 벅차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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