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카카오톡

by 서승민

언제부턴가 카카오톡 메시지를 읽고 보내는 일이 오랜 고민을 요구하는 수고로운 노동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렵고 불편하고 걱정스러운 일이 되었다. 원래는 이렇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채팅방에서 몇 시간을 수다 떨던 시절도 있었다. 실시간으로 메시지가 쏟아지고, ㅋ과 욕설과 그날 있었던 웃긴 에피소드로 깔깔거리던 때였다. 억울했던 일이나 짜증 나는 일, 사소한 고민들도 별생각 없이 주고받았다.


내가 카카오톡을 여는 횟수가 주는 만큼 채팅방의 알림 수도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무엇이 먼저인지 확신할 수 없다.


누군가는 취업을 했고, 누군가는 이직을 했고, 누군가는 결혼을 했고, 누군가는 육아를 했다. 각자의 하루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느슨했지만 같은 궤도를 공전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삶의 풍경과 고민의 주제가 달라졌다. 같은 학교 같은 학원을 다니던 고향 친구들은 이제 각자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다. 동아리방과 술집을 전전하던 대학 친구들과는 더 이상 학교 정문 앞 굴다리에서 만나지 않는다. 한 때 뜻을 맞추고 이어가던 모임들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나도 나대로 살며 먼 나라의 어느 도시로 흘러들어왔다. 그렇게 영어로 생활하고 일하면서 알게 된 뜻밖의 사실이 있다.


나는 타인의 말을 충분히 듣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상대가 어떤 말을 할지 상황을 보고 미리 짐작한 뒤, 자동응답기처럼 준비된 대답을 내놓는 데 익숙했다. 모국어로 대화할 때는 자연스러운 리액션으로 그 버릇을 감출 수 있었지만 영어로는 그게 불가능했다.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엉뚱한 대답을 내놓는 일이 잦아졌다. 그 모습을 처음 본 아내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대화를 듣고 있는 게 아니라 단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의 소통 방식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대화가 끝난 뒤면 내가 놓친 맥락은 없었는지, 의도를 잘못 짐작한 건 아니었는지 곱씹게 되었다. 상대의 말이 무례하게 느껴질 때도, 대화가 피상적으로 흘러갈 때도, 나는 먼저 나 자신을 의심했다. 내가 충분히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진 건 아닐까 하고.


이런 상태에서 카카오톡 메시지처럼 텍스트로만 주고받는 소통은 점점 버거워졌다. 표정도, 몸짓도, 말의 온도도 없이 휴대폰 화면 위에 놓인 몇 줄의 문장만으로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공들여 적은 메시지가 오해 없이 전달될 수 있을지, 그 문장 뒤에 깔린 나의 근황과 마음까지 닿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메시지를 읽고 쓰는 일은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를 빼내는 일처럼 불편해졌다. 부모님께 안부를 전하는 것과 같은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더 이상 앱을 열지 않게 되었다. 알림의 빈도가 줄어든 만큼 메시지 하나의 무게는 무겁게 느껴졌다. 가까운 친구에게 보내는 짧은 답장 한 줄도 몇 번을 고쳐 쓴 뒤에야 전송 버튼을 누른다.


내가 예민해서일지도 모르고 겁이 많아진 탓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밥벌이를 하는 게 녹록지 않은 일이라는 걸 실감하는 요즘, 뾰족한 단어 하나가 서로의 여유 없는 마음을 건드릴까 조심스럽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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