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와 자아상

by 서승민

2025년 초 미국 정권이 교체됐다. 정부를 효율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구호 아래, 많은 공무원과 관련 종사자들이 불확실한 시간을 지나야 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여러 사람이 자의 반 타의 반 짐을 쌌다. 매년 계약을 갱신하던 연구자와 개발자들 중 일부는 더 이상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공무원의 직함을 내려놓고 사기업으로 옮긴 사람도 있었고, 조용히 은퇴를 택한 사람도 있었다.


며칠 전, 꽤 긴 시간동안 프로젝트를 함께하던 동료 중 한 명이 은퇴했다. 식사나 축하 파티 없는 조용한 퇴장이었다. 그는 동료들이 전한 e-card 한 장과 작은 선물을 손에 쥐고 떠났다.


그의 사무실과 나의 사무실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복도를 지나다 본, 그가 떠난 책상 위엔 오래된 서류와 필기도구가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그가 물리적으로 남기고 간 것들은 그게 전부였다. 노트북과 공무원 신분증은 반납되었을 것이다. 그가 수십 년간 해온 일들은 인터넷과 데이터베이스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겠지만 그가 무엇을 가슴 속에 품고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설렘이었는지, 아쉬움이었는지, 혹은 후련함이었는지 나는 짐작하지 않는다.


은퇴하는 나를 상상해본다. 어떤 날은 홀로 고요히 풍화되는 모습을 떠올리고, 어떤 날은 해질녘 산책을 느릿느릿 즐기며 미소 짓는 나를 본다. 결국 그 모든 장면은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전형적인 은퇴자의 이미지에 다름 아니다. 여유롭거나 허탈하거나, 혹은 그 둘의 중간쯤에 있는 모습들이다. 그 상상 속에서, 이미 정리된 숫자나 과거의 직함은 더 이상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무엇으로 하루를 채울지에 대한 감각만이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게 좋다고 누군가 말했다. 누가 가장 처음 꺼낸 말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나는 저 말에 동의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일과 취미가 다양해서 하나쯤 못하게 되더라도 아쉬울 것 없는 사람들. 일상을 천진난만하고 가볍게 산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들. 삶의 색깔이 다채로운 사람들.


적지 않은 취미생활과 이런저런 활동을 시도했음에도, 나는 도통 가벼워지지 않았다. 나는 밥벌이에 대한 불안, 미래에 대한 불안, 텅 빈 잔고에 대한 불안에 늘 쫓겼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채찍질 하는 게 생존을 위한 최우선 과제라고 여겼다. 쉰다는 것은 늘 죄책감을 동반하는 막중한 일이었다.


내 의지로 선택한 길들에 대한 보상심리까지 더해졌다. 나는 이 선택을 했으니, 최소한 이 정도의 결과는 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 기준은 대개 목표치나 연봉 같은 숫자로 환산되었다. 더 오래 공부했고, 다른 길을 선택했으니 그만큼 더 벌어야 한다고 여겼다.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지만, 돌이켜보면 숨 막히는 요구에 가까웠다.


대학생과 대학원생 시절, 내가 추구하던 나의 모습은 뚜렷했다. ‘남들과는 다른, 남들보다 쿨한 사람.' 나는 비범함에 목 말라있었다. 평범함과 지루함은 내게 저주나 마찬가지였다. 내 인생은 조금 달랐으면 했고,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나를 타인과 저울질했다. 단순하고 순진했다. 그래서 살아가는 데 쉬운 점도 많았다.


그 자아상은 꽤 오래 살아남았다. 사는 나라가 바뀌고, 직업이 생기고,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나서야 조금씩 흐려졌다. 이젠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그러지 않으려고 애쓴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도 많은 집중을 요구한다. 나는 예전처럼 한 문장으로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적어낼 수 없다. 그 빈자리를 성급하게 채우지 않으려 한다. 동료가 떠난 책상은 며칠 새 말끔히 비어 있었다.

수요일 연재
이전 01화여행자와 머무르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