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와 머무르는 자

by 서승민

연고 없는 외국에서 몇 년을 살다 보니, 익숙함과 낯섦의 자리가 바뀌기도 한다.


4년 전 미국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다른 색깔의 신호등, 노란 스쿨버스, 저마다 다르게 생긴 집과 정원, 공원을 가로지르는 사슴 무리까지. 나는 분명 며칠 관광 온 여행객은 아니었지만, 꼼짝없이 여행자였다. 꼭 새 학년 반 배정을 받고 난 뒤 교실로 걸어 들어가는 초등학생 같았다.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손을 들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조차 망설여지며, 저 복도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가슴 울렁거리는 그 기분 말이다.


도무지 집 같지 않던 남의 나라, 남의 도시도 시간이 1년, 2년 흐르자 조금씩 달라졌다. 타지에서 살아간다는 두려움과 긴장감, 설렘과 두근거림은 조용히 증발했다. 뜻밖의 감동과 낯선 것이 주는 미지의 아름다움은 "오늘 뭐 먹지?", "이번 주말에 뭐 하지?" 같은 건조한 고민들로 대체되었다. 많은 것이 예측 가능해졌다. 내가 잘 적응해가고 있다는 대견함과 성취감도 낯섦만이 줄 수 있는 신선함을 되살려내진 못했다.


집이 비로소 집처럼 편안해지자 지루함과 불안함이 밀려들었다. 일상은 이제 내가 잘 알고 있는 리듬으로 반복될 뿐이었고, 한때 영감을 주던 풍경들은 그저 무대 위에 놓인 배경처럼 당연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어 들뜨던 발걸음은 줄어들었고, 입가에 은은히 번지던 미소도 희미해졌다. 매일이 여행이라는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 역시 반복되는 일상 속에 묻혀버렸다.


이건 처음 겪는 일이 아니었다. 익숙함이 편안함을 지나 지루함으로 변하는 순간들. 나는 비슷한 마음을 여러 번 지나왔다. 시간과 장소는 제각각 달랐지만, 모든 불안과 무력감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서울에 살던 시절, 나는 부모님이 계신 부산에 자주 내려가지 않았다. 심할 때는 1년에 한 번만, 그것도 마지못해 다녀온 적도 있었다. 서울살이와 대학 생활에 들떠 있던 내게 부산은 어딘가 촌스럽고 뒤처진 도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부모님 댁에서 하루이틀 지내고 나면, 얼른 서울로 돌아가 내가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밀려왔다. 하루라도 더 있다가는 완전히 뒤처질 것 같다는 두려움. 딱히 급한 일이 있지도 않았으면서, 대체 누구로부터 무엇으로부터 뒤처진다고 느끼는지 알지 못한 채.


지난 가을, 나는 3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내가 20년을 살았던 부산과 이후 10년을 보낸 서울, 익숙하다 못해 지루하고 갑갑하게 느껴졌던 그 도시들이 달리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나의 고향에서 다시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가까웠던 것들이 멀어져 있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과 장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 나를 지치게 만들던 장소들이 이제는 오히려 거대한 위로와 안락함을 건네고 있었다. 단일성과 진부함이 목을 조여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던 나의 동네와 아파트, 자취방과 학교, 술집 즐비한 골목들이 더 이상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분명 시간이 흐르며 장소도, 도시도, 사람들도 변해왔을 것이다. 한때는 배경처럼 지나치던 장면들 앞에서 이제는 자주 발걸음을 멈춘다. 익숙함 속에서도 다시 낯섦을 발견하려 애쓰게 된다. 머무르고 있는 것과 여행 중인 것의 경계가, 요즘 들어서는 자주 흐려진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