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어여쁜 색감의 알록달록한 앞면지.
오른쪽 아래 고개를 빼꼼 내밀며 저를 기다렸다는 듯, 제가 궁금하다는 듯,
슬그머니 미소 짓는 그녀를 발견합니다.
속표지 속 오렌지색 나뭇잎을 타고 두둥실 떠가는 그녀의 동선을 따라 드디어 본문 속으로 들어갑니다.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놀랐어요.
이후 페이지들을 넘기며 더욱 놀라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플랩, 곡선 커팅이 들어간 페이지들의 윤곽선,
따뜻하고 선명하면서도 조화로운 색의 일러스트.. 그리고 시적 표현까지.
"그저 참 좋았습니다."
이 한 문장으로 제 마음이 표현될까요.
문득 그녀가 전형적 백인 미인으로 묘사되지 않은 것을 발견했어요.
일러스트 작가의 가치관과 의식을 그림 서사로 잘 담아낸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관심 있게 찾아봤어요.
과연 이번 그림책 역시 그녀의 그림책다웠다고나 할까요.
그녀의 입모양, 눈빛, 손짓을 따라
마치 굉장한 여행을 한 것만 같습니다.
특히 중간에 넘실대는 파도 결처럼 이어지는 이야기 초반
상측 곡선 커팅 페이지들이 연속으로 레이어드 되어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정말 바람을 타고 그녀를 지켜 보며 나는 기분이었어요.
뛰어다니는 말들이 그녀의 손가락만큼 작게 표현된 부분은 또 어떻고요.
계절마다, 지구 곳곳마다 스며들어 그녀의 손끝에서 많은 것들이 읽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이지 숨바꼭질을 하듯 여기저기 원화의 '예쁨'들을 찾아다녔네요.
볼거리가 많다는 말로도 부족한..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그림책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앞면지와 같은 듯 다르게 연출된 뒷면지 속 그녀는 무언가 개운한듯 반짝이며 그림책 바깥을 향해 걷습니다. 엄위하게 자리잡혀 있던 제 내면의 '지구'에 대한 이미지가 친근하게 바뀌어 개운한 순간이었습니다.
책을 덮습니다.
마치 지구와 상호 소통을 하는 느낌을 받았던 덕분일까요,
우리의 친구 지구, 그림책 속 그녀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가까운 주변부터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가 누리는 것 중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이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나는 내 친구 지구를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은 실천 목록을 짜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