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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날 Sep 11. 2022

관계의존

몇년 만에 다시 혼자가 되었다. 끝이 보이는 관계라는 생각을 지닌채 몇개월을 함께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먼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을 때 생각한 것만큼 슬프지 않았고 생각한 것만큼 아프지 않았다.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했기에 누군가 궁금한 마음에 나에게 이별의 이유를 물으면 '남들 헤어지는 비슷한 이유'로 헤어졌다고 짧게 대답하곤 했다. 사실, 그것이 사실이다. 바람, 거짓말, 금전거래와 같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말로 마음과 마음의 문제였고, 그래서 더 이상 설명할게 없었다. 법적의무가 존재하지 않는 연인관계에선  '마음'의 문제말고는 사실 문제가 될 게 없지 않은가. 원망하는 마음도, 그리워하는 마음도, 이제는 없다.

그런데 한가지 이별의 후유증이라면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일상을 공유할 누군가의 부재로 인한 불안함이다. 나는 약 6년간 내가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나의 소소한 일상을 다른 누구와 공유했었다. 사소한 안부인사, 밥은 잘챙겨먹었냐는 시덥지않은 질문들, 뜬금없이 뭐하냐고 묻곤했던 문자들. 가끔은 그런 사소한 메시지때문에 서운하기도 하고 다투기도 했던.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이 생각보다 컸던 것 같다. 사실 내가 가장 크게 그가 변했다고 생각했던 것도 이 사소한 것들이었다. 어느순간 나에게 뭐하냐고 물어보는 순간이 눈에 띄게 줄었었고,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에 (그는 그것이 아니었다고해도) 혼자서 조용히 마음을 정리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오로지 그것때문에 내가 마음을 정리하게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요즘 마치 분리불안에 걸린 사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순간을 종종 겪는다. 그 순간이 몇시간씩 오래 지속되진 않지만 누군가와 연락을 하지 않으면 외롭고 불안해서 가만히있지를 못하겠다. 내가 이별을 처음 겪어본 것도 아니고, 20대 초반에 영화속에 나올 것 같은  그런 청승맞은 이별을 이미 한차례 겪은 사람으로서 이런 감정이 감당못할 수준은 아니지만 성가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 문득 나의 사고는 스마트폰이 없던 이전의 시대로까지 흘러갔고, 학창시절 내가 느꼈던 외로움과 그것의 허망함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난 외로움이 많은 아이였고 그래서 그렇게 첫사랑에 큰 의미를 두고 그를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나는 대상이 누구였더라도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행복함에 첫사랑의 '그'를 그렇게 좋아했을 것 같다. 내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외로움을 잘 느꼈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냥 나의 타고난 성향탓이겠지.  '타고난' 성향이라고하기엔 20대에 많은 것들을 '혼자' 하긴했지만.

첫사랑과 이별한 후 타고난 성향이 바뀐건지(말이 모순적이다) 학창시절 느꼈던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외로움은 잘 느끼지 않게 됐다. 그러다 최근에 오랜만에 그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때와의 차이점은 그땐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고 지금은 이유가 그때보단 명확하다는 것.. 하지만 그게 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내가 그에게 알게모르게 생각보다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익숙해져있었다는게 더 맞을까?

이건 미련, 그리움과 같은 감정은 아니고 오히려 습관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러다 나는 왜 누군가와 생각과 일상을 공유해야 안정감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낄까, 라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다.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떠오른 단어가 '관계의존'이었다. 내가 너무 관계에 큰 의미를 두고 의존하고 있는게 아닐까. 스스로 완전하고 안정적일 수 있는데 자꾸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확인하고 싶어하는게 아닐까. 왜 나의 일상을 오롯이 마주할 수 없을까. 왜 내가 무슨 생각을 했고 무엇을 했다고 알려야만 안정감을 느낄까.

사실 장기간의 연애 후 최근에 이별을 겪은 나로서, 요즘은 멘탈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시간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극복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습관'은 결코 나의 Well-Being에 도움이 되지 못하며 내가 원하는 알베르토와 같은 남자를 만나도 관계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일상을, 내 삶을 온전히 마주해야한다. 내 눈 앞에 있는 것, 현재 내가 느끼는 것, 현재 나를 둘러싸고있는 존재들에 집중하고 함께 해야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있기 때문이다.

습관을 바꾸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노력해보려고 한다.

나는 불완전하지 않고,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며, 완전할 수 있는 존재이다.



2020년 8월의 어느날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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