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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날 Dec 20. 2020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

인생에는 몇가지의 '사실'들이 있다. 나의 인생을 그것을 알게 된 '전'과 '후'로 나누어주는 그런 사실들. 보통 그런 사실들은 불쑥, 마치 예기치못한 손님처럼 나의 마음가짐과는 상관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공포영화에서 괴물이 나올 때 눈을 질끈 감는 것처럼 혹은 듣기싫은 말을 들을 때 귀를 막아버리는 것처럼 혹은 어쩐지 만나기 싫은 사람을 피하는 발걸음처럼 찰나의 판단도 하지도 못한채 속수무책으로 그 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은 나의 온 몸으로 기억되고 새겨진다.


사람의 감각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나의 하루에, 아니 나의 인생에 전혀 계획에도 없고 예상할 수도 없었던 그 순간을 온 몸이 기억해버리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감각으로 무언가 기억하는 것은, 그것이 나의 일부가 되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그것들을 지우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의 일부분이 된 무언가를 떼어내려면 고통이 수반되기 마련이고, 그것을 억지로 떼려고 하면 할수록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맞이한 그 사실들은 내 마음 속에 깊게 뿌리를 박고 자라나선, 내 안의 괴물이 된다. 그 사실을 알게됐다는 것에 대한, 혹은 그 사실 자체에 대한 원망, 그것을 지우려고 하는 노력과 절망감들이 모여 괴물을 더욱 키운다. 나는 이 괴물의 또 다른 이름은 '피해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그 '사실' 자체에 대해 원망할 것이다. 그러다 그 사실을 알게된 '상황'에 대해 원망할 것이고 그 상황에 대한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져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원망을 해서 내 안의 괴물이 작아진다던가 하면 참 좋겠지만 오히려 반대의 작용을 하게 될 것이고 그 원망의 대상이 '내'가 되는 순간 끝없는 자기혐오로 추락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나도 한때 내 탓이 아니라며 강박적인 위로를, 혹은 마치 그것이 별일 아니라는듯 의도적인 회피를, 혹은 상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원망을 했던 적이 있었다. 이러한 행동들을 통해 순간적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자꾸만 튀어나오는 그 '괴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어느날, 그 괴물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더 이상 '억지로'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무언가를 지우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것을 떠올려야하기 마련이니까. 물론 결심을 했다고해서 바로 그것들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시간의 흐름에 맡겨 그대로 두려했다.


이를 위해서는 나의 일상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고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을 하는 것이다. 문득문득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순간들이 떠오르면 지나가지 말라고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보내주어야 한다. 내가 더 이상 그것을 붙잡지도, 쳐다보지도 않을 때 그 괴물도 나에게 찾아오는 것을 멈출 것이다. 이것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내 안의 괴물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물론 이것은 나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 상대에게 나의 상황을 털어놓든 그렇지 않든, 큰 힘이 된다.


나의 괴로움을 핑계로 상대에게만 의지하고 싶어하고, 상대가 나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며 서운해한 적도 있었다. 사실, 누군가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당시의 상대는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나의 슬픔을 공유해주었다는 그 사실 자체로 고마운 일이지, 상대가 나만큼 함께 힘들어하지 않았다고해서 서운해할 일은 아니다. 이러한 서운한 마음 또한 '피해의식'이라는 괴물의 영향일 것이다.


결국은 '나'의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괴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위에도 눈이 내리고 꽃잎이 떨어지며 해가 비출 것이다. 그리고 언젠간, 더 이상 그 사실을 알게된 '이후'의 삶이 아닌, 그저 한 차례의 폭풍이 지나간 '지금'의 삶을 살게될 것이다. 그 순간은 아주 서서히, 조용히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일상을, 나의 삶을 서서히 물들일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나의 '지금'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면 된다. 그러다보면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내가 지나온 길을 뒤돌아볼 수 있는, 그런 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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