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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날 Dec 03. 2020

서른이 넘어 부모와 함께 산다는 것

한지붕 아래 어른 세명

나는 한번도 제대로 독립을 해서 홀로 살아본 적이 없다. 여기서 '제대로'라는 말을 붙인 것은 대학생 때 원룸에서 친구와 한달, 취직 준비할때 또 그 친구와 함께 두 달을 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번의 경험은 기간도 짧았고, 친구와 함께 살기도 했고, 공간적으로도 나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기에 '독립'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도 내년이면 어느덧 30대 초반 끝자락의 나이가 된다. 언제부터인지 이상하게 거실에 잘 나가지 않게 된다. 내가 거실에 나가 TV를 볼 때는 부모님이 두 분 다 안 계실 때이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과 함께 한 공간에 있는 것이 편하지 않아졌다. 예전에는 크게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들어 부쩍 '완전히 혼자 있고싶다'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소리를 공유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지 않는 대화 소리, 나의 취향이 아닌 TV소리, 화장실 물내리는 소리, 발걸음 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요즘들어 부쩍 이런 '소리'들을 듣지 않고 싶어졌고, 내가 만들어내는 소리만 들을 수 있는 나만의 온전한 공간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년에는, 엄마께서 독립을 제안하기 전부터, 나가살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었다. 엄마가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아마 아빠와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우리집에 크게 불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나와 부모님은 개별적으로든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서든 잘 안맞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과 멀어져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그나마 애정을 가지고 보았던 모습들도 사라지게 되었고 이제는 견디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누군가 들으면 그 정도는 누구나 그런다며 그 정도면 좋은 아빠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서서히 나의 마음은 멀어졌고 이 멀어진 마음은 거리가 멀어져야 조금이나마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이러한 독립에 대한 갈망의 원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그냥 머리가 커서, 라는 결론을 내렸다. 원래도 크게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제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을 하게 되면서 부모의 '역할'보다는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좀 더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 동안은 그들의 역할에 감사하면서, 내가 더 잘해야지라며 나 또한 스스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을 평가했다면, 이제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와 우리 부모는 그렇게 잘 맞는 사람들이 아니구나. 마치 잘 맞지 않는 친구와 억지로 함께 사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중에서도 같은 무리에 있지만 둘이서는 연락을 잘 하지 않는, 어쩌다 둘만 있게 되면 조금은 어색한 그런 친구. 두 분 다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오히려 좋으신 분들이다) 그저 나와는 잘 맞지 않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의 짝이라고 선택한 둘이서만 잘 맞으면 됐지 뭐. 


그래서 결론은 나는 2월에 독립을 할 예정이다. 마침 살 집도 구해졌고 세 명이 모두가 간절히 나의 독립을 바라고 있으므로 그렇게 결론이 났다. 요즘은 그래서 어떤 가전제품을 살지,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지, 요리는 어떤걸 해먹을지 하루하루 독립만 바라보며 살고있다. 막상 혼자서 나가살다보면 어려움도 있겠지만(2월에 울면서 '첫 자취 경험기'를 쓸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너무 기대가 된다. 이러한 '부푼 꿈'의 부작용으로 모든걸 2월로 미뤄놓고 요즘은 퇴근해서 누워있기 바쁘다. 독립하면 큰 화면으로 보고싶었던 영화도 맘껏 보고, 집 근처 헬스장도 다니고, 피아노 학원도 다니고, 날이 좀 더 풀리면 수영도 배우고, 영상 편집도 제대로 다시 해보고 등등 머릿속엔 온통 2월부터 할 것들로 가득차있다. 이런 마음이 퇴근 후 아무것도 안하는 나 자신을 더욱더 합리화해주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건 별로지만 생애 첫 독립은 매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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