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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날 Dec 02. 2020

우리의 관계는 실패했다.

5년간 연애의 종지부

 얼마전 나와 10살 차이가 나는, 현재 군복무중에 있는 사촌동생이 휴가를 나와 합정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 사촌동생은 나의 지난 연애사를 거의다 알고있는데, 이번에 만나서 '너가 지금 알고있는 그' 남자친구와 올해 여름에 헤어졌다고 말을 했다. 우리가 5년이상,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했다는 것도 동생은 알고 있었다. 나의 말을 듣고 동생이 처음 뱉은 한마디는 '아깝다'였다. 동생의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기에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가?'라고 짧게 대답을 하고, 이내 곧 '20대 초반이 모르는 어른들의 연애가 있는거야~'라며 허세아닌 허세를 부렸다.


사실 사촌동생의 그 한마디에 '전혀 그런게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한번도 안해봤다고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짧지 않은 기간을 만났던 사람과 이별을 하고 내가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상실감'과 '허무함' 사이의 경계, 그 어디쯤이었다. 이때 상실감은 좋아했던 사람과의 헤어짐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의 감정이라기보단, 우리 관계를 '실패'했다는 자괴감의 일종이었다. 내가 우리 관계를 잘 유지하지 못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야말로 관계에 일종의 '성공'과 '끝'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끝'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물었을때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결혼? 아이? 가정? 이 모든 것도 나에게 영구적인 결말처럼 여겨지지 않기에 명확하게 무엇이다, 지금도 답을 내릴 수가 없다.


감정의 다른 한 축인 '허무함'은 내가 그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싶다. 사실, 그와 만날때도 알고있었지만, 내가 그를 정말로 사랑했냐는 질문에 나는 쉽사리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가 없다. 사랑이 꼭 '20대 초반의 첫사랑'과 같은 모습을 하고있지 않기에 내가 그에게 지녔던 감정이 사랑이 아니었다, 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이별 후 내가 느꼈던 감정을 생각해보면 조금 허무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그와 만남을 시작했을 때도 설렘보단 편안함으로 시작하였고, 그를 '남자'로서 대하기보단 편한 '친구'로 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나의 태도가 종종 그를 외롭게한 것은 아닌지, 약간의 미안함과 씁쓸한 마음도 든다. 사실 아직도 헷갈린다. 원래 나의 사랑 방식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를 정말로 덜 사랑해서 그런 것인지.


헤어진지 약 4개월 정도가 흐른 지금, 위에 언급했던 두가지 감정은 많이 희석되었다. 과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시간에서 최선을 다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해도 나는 그때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렇게 믿으려한다. ‘실패’의 사전적 정의는 ‘일을 잘못하여 그르치는 것’이다. 나는, 아니 우리는 조금 미숙했을지언정 잘못하지 않았고 그르치지 않았다. 우리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때의 파편들은 지금의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그것은 앞으로 남은 인생의 '나'의 일부분이 되어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헤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겪다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알게되기 마련이니까. 이런저런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다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누군가를 만나고싶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만 같은 모순적인 마음이다. 누군가를 만나고싶지 않다는 것은 크게 외롭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이제 30대 초중반의 나이에서 누군가를 새로이 만나면 결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에, 당장 누군가를 (진지하게) 만나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지 않나 싶다. 하고싶은 것도 많아서 현재로선 지금의 나만의 시간이 좋다. 그리고 동시에 드는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마음은, 글쎄, 과거의 연애에서 내가 그를 열렬히 사랑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때문일까. 받는 사랑보다는 주는 사랑을 하고싶은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지난 오랜 연애에서 얻은 '교훈'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관계가 '실패'했다는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함께 울고웃으며 성장했던 지난날들은 나의 인생에 언제나 남아있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나 자신 안에도 남아있을 것이다. '성숙'이라는 단어는 조금 거창할 수도 있겠다. 그냥,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돌이켜볼 수 있고,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에 좀 더 가까워졌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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