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창작 소설
다음날부터 우리는 연락을 자주 주고받으며 부산에서의 휴가 계획을 함께 구상했다. 같이 계획을 짰다고는 하지만 회사일로 바쁜 그놈을 대신해 한가한 내가 대부분의 일정을 계획했다. 나는 작년 겨울에 회사에 병가를 신청해서 일을 쉬고 있어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민우에게 야구장 좌석도를 문자로 보내주면서 좋아하는 자리가 있는지, 바다가 보이는 가게에 대한 링크를 보내주며 이 가게는 어떤지 등을 녀석에게 물어보았다. 민우는 괜찮네, 좋다, 따위의 짤막한 답변을 하며 내 계좌 잔액보다 못한 성의를 보였다. 어쩐지 녀석의 계략에 휘말린 거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내가 놀고 싶은 대로 계획을 짜서 통보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크게 억울하진 않았다.
나는 부산으로 가는 기차표와 야구장 응원석 근처 오른쪽 자리를 예매했다. 그리고 수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민이는 전화를 바로 받지 않았고, 2건의 부재중 통화를 확인하고 나서야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녀석의 스케줄부터 물었다.
“다음 주 뭐하냐?”
“갑자기 다음 주는 왜?”
“민우가 부산으로 휴가 간다는데, 같이 가서 놀자고”
수민이는 잠깐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휴가 쓰기는 힘들고, 일 끝내고 저녁쯤에야 시간이 될 것 같은데”
그는 위대한 창업자의 도약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적인 조선소로 성장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최근에 직장을 옮긴 상태였다. 그것도 무려 경력직으로.
“전 세계 오대양에 떠다니는 배 니가 다 만드냐?”
“일 할 사람이 없다. 부서에 사람이 3명인데, 한 명은 부장. 한 명은 차장. 불행히도 대리는 없고 과장인 내가 막내다. 그러니 내가 일 다 해야지. 10년을 일하고 회사 옮겼더니 막내부터 다시 시작이다.”
피로가 덕지덕지 묻은 목소리였다.
“막내니까 막내답게 책임감 없이 회사 막 다녀야지. 그 정도 배짱도 없이 무슨 회사를 다닌다고 으이구,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회사생활은 기세라니까. 질질 끌려다니지 말고 사고도 치고 해야 너를 쉽게 안 본다고.”
“지도 그렇게 못 하는 주제에 남에게는 잘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보네.”
“원래 남에게 하는 충고는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 하더라. 정 안되면 그날 회사일 빨리 끝내고 저녁 일찍 보자. 바다 보면서 소주라도 한잔 하게.”
“그날 상황보고 연락할게. 당장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다음 주 일을 어떻게 아냐. 일은 넘쳐나고 사람은 들어오지는 않고. 뭘 어쩌라는 건지.”
나에게 화를 내는 것보단 자신의 상사나 회사 내 인사부서를 찾아가는 게 빠른 문제 해결을 위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수민이의 지루한 연설을 들어야 될 수도 있다는 염려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커피를 내리기 위해 물을 끓이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푸념보다 내 집에서 끓고 있는 물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비록 그것이 아주 친한 친구의 푸념일지라도.
나는 나중에 다시 통화를 하자고 말하며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