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앙가주 Dec 14. 2022

그 여름날(1)

짧은 창작 소설


 내 이름이 들렸다. 나는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인사를 건넨 후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물으셨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매번 나를 곤욕스럽게 한다. 문제없이 잘 지낸다면 병원에 올 이유가 없는 셈이니 결국 힘들게 지내고 있다고 답변을 해야 하는데, 그 이유나 상황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을 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똑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똑같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매번 그렇게 대답을 해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상담은 30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성과 없는 상담을 끝내고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잠시 후 간호사는 나를 불렀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인공지능 로봇과 같은 건조한 음성으로 책을 읽듯이 나에게 하루에 2번 아침과 저녁에 약을 복용하라며 두툼한 약봉지를 건넸다. 약을 받아 들면서 정작 상담이 필요한 사람은 그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는 동시에, 혹시 병원에서 환자를 배려해서 환자의 기분 상태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도록 간호사에게 지시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들었다. 이곳에 오는 환자는 대부분이 우울한 기분일 텐데 간호사가 가요프로에 나오는 아이돌처럼 밝고 경쾌하게 환자의 이름과 약 복용법을 알려준다면 그 병원은 얼마 가지 못해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았다. 사람은 늘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며 고통받는 존재이니까. 물론 간호사가 아이돌 수준의 미모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약을 받아 나와 편의점으로 가서 생수를 샀다. 처방받은 약을 꺼내서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시려 하는데 전화가 울렸다. 민우였다. 

 “뭐 하고 있냐?”

 녀석은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손바닥 위에 뜯어진 약봉지를 내려보며 대답했다. 

 “방금 마트에서 먹을 것 좀 사서 나왔지. 이제 집에 가려고 주차장 가는 길인데. 넌 뭐하는데?”

 “야, 부산 놀러 가자. 나 휴가 받았다.”

 녀석은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 따위는 가볍게 건너뛰고 본론으로 바로 넘어갔다.

 “휴가? 갑자기? 며칠 쉬는데?”

 “주말 다 포함하면 7일, 며칠은 가족이랑 보내야 되니까 한 2박 정도 부산 가서 놀자. 수민이도 부르고.”

 “날짜가 언젠데?”

 “다음 주. 부산 가서 야구장도 가고 바닷가 가서 해변 보면서 회에 소주도 한잔하고, 캬아, 좋을 것 같지 않냐?”

 민우는 ‘캬아’하고 길게 소리 내며 말했다. 기대감에 찬 목소리였다.

 “그래. 뭐 그러자.”

 나는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녀석의 기분에 전염되어 벌써 다음 주가 기다려졌다.    

작가의 이전글 타국의 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