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매일 책을 끼고 살진 않았지만 그래도 주변 지인에 비해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해 왔다. 그렇게 독서가 취미가 되는 수준까지 되니 책을 펼쳐서 초반 몇 페이지를 읽다 보면 글의 방향성이라든지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초반부를 넘어가면서까지 책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한 감을 잡지 못했다. 책의 초입을 벗어나기 전까지 소위 모범생의 대학시절 일기를 엿보는 듯한 느낌만 계속 들었다. 책 속의 작가는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의 효용성을 충실히 이용한 이상적인 대학생이라는 생각만 들뿐, 좋은 책에서 느껴지는 신선한 감흥은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던 대학시절은 고등학교까지 해왔던 공부에 깊이를 더하는 시간이 아니라 술을 마시며 낭만을 찾고 연애를 하며 젊은 시절의 추억을 만드는 시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생각들을 꾸준히 이행하며 그 시절을 지나왔다. 대다수의 내 주변 지인들도 나와 비슷하거나 혹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취업 준비에 시간을 보냈었다.
이 두가지 부류의 대학생이 아닌 저자와 같이 순수하게 배움이라는 목적을 위해 대학시절을 보낸 사람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작가를 통해 이런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책의 말미에는 조금이나마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나 또한 배움에 대한 갈증을 대학시절 동안 잠깐이나마 경험 한 적이 있어서였다.
대학 신입생 시절을 거쳐 군 제대 후 다시 대학에 복귀했을 무렵 나는 전공과목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취업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선택한 전공은 흥미를 느끼는 분야가 아니기도 했고, 수업 시간 내내 ‘전자(電磁)’라고 하는 영역은 눈에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그 시절 나는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에 보이는 그런 종류의 학문, 인간의 생활과 맞닿아 있는 학문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제대 후 다른 과의 수업을 도강을 하거나,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 소수의 교양과목으로 그 갈증을 조금이나마 달래야 했다. 하지만 대학시절 내내 정체를 알 수 없는 허기짐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 채로 시간은 지나갔고 졸업을 눈앞에 뒀을 때는 취업이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며 정신없이 지냈다. 그러는 동안 그 갈증은 마음의 방 어딘가에 불을 끈 채 웅크리고 앉아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감추었다.
수년이 흐른 지금, 누군가의 추천으로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은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잊혀진 방의 불을 희미하게나마 밝혀주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책의 도입 부분만을 읽고 ‘범생이의’ 일기라고 치부했던 나 자신이 너무나 편협한 인간처럼 보여서였다.
정해진 삶은 없고 모든 삶은 존중 받아 마땅하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자부해 왔음에도, 바르고 부지런함은 지루한 인간들이나 가진 속성이라고 관성적으로 평가절하했던 나의 속마음을 들켜버린 거 같았다. 뛰어난 재능과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회성만이 우러러보아야 할 가치라는 폭력적인 가치관이 내 마음 어딘가에도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문해 보았다.
온전히 배움에 집중했던 작가의 대학시절은 충분히 낭만적이고 그녀의 삶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힘들고 외롭던 내면을 공부를 통해 위로하고 버텨내 온 그녀의 삶이 누구보다 단단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공부는 추억으로만 남은 것이 아니라 인생의 토대가 되었고 세월이 지날수록 그 지반이 점점 단단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녀의 삶이 부럽기도 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배움의 기쁨이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학창 시절과는 달리 선택의 자유가 있고 경쟁이 아닌 순수한 호기심을 채워가는 행위이기에 그럴 것이다. 지금 이 책을 만나 나는 배움의 갈증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고 능동적 공부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이 감정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잊혀진 대학시절과 내 마음속 불 꺼진 많은 방 가운데 하나의 전구에 불이 들어오게 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