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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가주 Sep 04. 2023

막막한 현실에서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촛불이라는 구원

[서평]톨스토이 단편선

 하나의 깊이 있는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한 책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소설집을 조금 더 선호하는 편이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하나의 이야기를 다 읽었다는 느낌이 좋다. 그리고 결말이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해서 나만의 의미를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어서 좋아한다.


이번에 톨스토이 단편을 읽었다. 톨스토이는 유명한 단편이 많아서 출판사마다 묶어 놓은 단편들이 다양하다. 이번에 읽게 된 단편들 중에는 흥미로운 것도 있고 조금은 고루한 면이 있는 것들도 있었다. 그래도 각각의 이야기에 대해 느끼는 점이 있어 짧게나마 단편 별로 서평을 써보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부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 욕심에 사로잡힌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바보 이반

- 주변의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욕심을 내려놓고 내가 가진 것을 내어주는 삶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이다.


세 그루의 사과나무

- 사람은 실수를 하며 살아가지만 진정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선을 베풂으로써 타인을 구원할 수도 있다. 작은 씨앗에서 시작해서 나무가 되고 결국 열매가 열리듯이 선이라는 하나의 씨앗을 심을 수만 있다면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아무 계산 없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삶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이다.


촛불

- 인간이 인간을 심판해서는 안 된다. 고통을 인내하며 신앙심을 져버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신은 선한 인간을 저버리지 않는다. 신은 인간을 악이 아니라 선이라는 우연을 통해서 심판하다.


두 순례자(두 노인)

- 신은 신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신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한다. 자신 안의 신을 간직한 채 언제나 타인에게 선을 행해야 한다.


기존에 읽어 보았던 단편도 있고 이번에 새롭게 읽게 된 단편도 있었다. 톨스토이의 단편이 오래된 고전이라 그런지 기독교적 정서가 많이 느껴졌다. 대부분의 단편에서 신에 대한 믿음, 인내하는 삶, 타인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가치관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신앙심 가득한 동화를 읽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지금 시대의 정서와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획득 가능한 성과가 보장되어 있는지를 정밀하게 계산한 후 재화와 노력을 투입하고,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을 제공해 줄 수 있는지를 따져 본 후에 연애를 시작하며, 격 없는 친밀감보다는 서로 간의 거리 두기를 요구하는 것이 지금의 사회다.


자신의 목숨을 버릴 각오로 타인을 구원해 낸 ‘세 그루의 사과나무’ 와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어주는 ‘바보 이반’ 이야기는 지금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순진한 동화를 넘어 이룰 수 없는 신화처럼 느껴진다.

비단 이 두 이야기만이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국가사업 중의 하나인 신규 고속도로 건설의 경로가 대통령의 아내가 소유하고 있는 땅으로 변경되는 지금의 작태를 보며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를 떠올리게 되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묻지마 범죄를 보며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를 곱씹게 된다.


이러한 작금의 현실을 바라보다 보면 결국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해답은 쉽게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이 질문에 대한 종착지는 사랑 일 것이 생각한다.


이 시대는 타인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렸다. 자신에게로 향하는 사랑만을 키우기 바쁘다. 그렇다면 결핍된 서로 간의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톨스토이는 다소 뻔하고 단순한 답을 이야기를 통해 제시한다. 타인에 대한 조건 없는 희생과 연민을 나눔으로써 우리는 함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 톨스토이가 내놓은 해답이다.


‘두 순례자’에서 알 수 있듯이 신은 신전이나 성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신은 자신의 내부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는 항상 그것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신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어둡고 막막한 이 현실에서 작은 ‘촛불’ 이다. 우리는 이제 그것을 꺼내어 나 아닌 누군가에게 건네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 지옥과도 같은 이 현실에서 타인을 구원함과 동시에 나 자신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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