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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가주 Nov 19. 2023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개의 날'

[서평] 개의 날 - 카롤린 라마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한 마리의 개가 있다. 그리고 그 개를 발견한 6명의 사람들이 있다. 이야기를 지어내어 잡지에 투고하는 트럭 운전사, 여신도를 찾아 헤매는 늙은 사제,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려는 여자, 직장을 잃고 친구들에게도 작별을 선언한 남자 동성애자, 남편을 잃고 세상에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여자, 아빠를 세상에서 떠나보내고 폭식증에 걸린 딸.     


그들은 버려진 그 개를 보며 자신들이 살아오며 느꼈던 고통과 외로움을 떠올리게 된다.


‘개의 날’은 연쇄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이야기 중심의 소설이 아니라, 버려진 개라는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을 깊이 있게 다룬 소설이다. 저자인 카롤린 라마르슈는 이 책을 통해 각각의 인물들의 내면을 수려하게 묘사했다.     


치밀한 감정 묘사가 주를 이루는 책을 오랜만에 집어 들었다. 이 책은 읽으면서 고개를 들어 인물들의 감정을 천천히 떠올리는 시간이 많았다. 인물들의 처지를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고 그들의 감정을 상상하며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책장은 느릿느릿 넘어갔다. 짙은 가을 정취를 산책하며 음미하듯, 함축적이고 간결한 인물들의 감정을 느긋하게 맛보았다. 온몸 구석구석 스며드는 기분 좋은 고독감이 몸을 감싸는 거 같았다.  

   

책 속의 그들 모두는 누군가에게 버린 받은 기억으로 인한 상처와 또다시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개를 지키려 했던 것은 자신과 닮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엾고 슬픈 자기 자신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개의 날’은 우리 주변에 드러나지 않은 외로움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고독이라는 늪에 누구는 무릎까지, 다른 누구는 허리, 또는 턱 밑까지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것을 인물들의 독백을 통해 보여준다.     


인물들이 버려진 개를 보며 삶의 고통을 떠올리듯, 우리 또한 그들의 독백을 읽어나가며 우리 삶의 고통을 돌이켜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들의 삶처럼 우리의 삶도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상기된 고통과 외로움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낯선 위로를 건넨다. 나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이 주는 위로. 그들이 버려진 개를 보며 받았을 작고 소중한 위로를 우리는 그들을 보며 느낄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소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좌절과 후회로 얼룩진 실패한 인생에서 느껴지는 짙은 외로움을 생동감 있게 보여줌으로써 인생의 많은 부분은 고통으로 채워져 있다는 불편하고 차가운 삶의 진실과 더불어 우리에게 투박한 위로를 건넨다. 보기 좋게 포장한 무책임한 긍정의 위로가 아니라, 깊고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며 우리는 함께 불행하다는 역설적인 위로가 그것이다.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인생의 시간에서 가슴이 벅찰 만큼 화려한 날을 맞이하는 순간은 찰나 와도 같다. 즐거운 날들 또한 가뭄의 단비처럼 우연한 기회에만 우리를 찾아온다. 결국 삶 속 대부분의 시간들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들로 채워져 있다. 


 영화 ‘꿈의 제인’의 제인의 말처럼, 비록 고통 안에 놓인 삶이지만 우리는 함께 불행하다는 생경한 위로는 이른 새벽 우연처럼 불어오는 달큰한 바람처럼 가끔이지만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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