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앙가주 Nov 26. 2023

소설이 건네는 낯선 위로-'어서오세요,휴남동서점입니다'

[서평]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 황보람

 

 사람을 만나 서로에 대해 대화를 나누나 보면 가끔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상대방 입장에선 가벼운 마음으로 물어본 것이겠지만,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에 이 질문에 대해 솔직하게 답변하는 것은 나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다. 짐작해 보면 그러한 표정의 속내는 자기계발서도 아닌 소설을 읽는 것이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냐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의문을 해소하려 매번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내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나쁜 짓을 하다 들켜 구차한 변명을 하는 아이가 된 거 같아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그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충분한 답변이 될 수 있다.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이유로 인생을 살다 넘어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퇴사와 이혼을 겪은 후 휴남동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영주. 취업 실패 후 서점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민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껴 회사를 나온 후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서점에서 뜨개질을 하는 정서. 고민 끝에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한 커피 원두 가게 대표 지미. 프로그래머 일에 몸과 마음을 소진하고 부서를 옮긴 후 작가의 삶을 사는 승우.      


힘든 시기를 지나온 그들은 휴남동 서점이라는 안식처를 통해 만남을 시작하고 관계를 맺는다. 서서히 서로 간의 간격을 좁혀나가며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받아들여짐으로써 그들 각자가 가진 아픔을 조금씩 치유하고 위로하며 일상을 이어간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힘을 낼 수 있다는 영주와 책이 우리를 다른 사람들 앞이나 위에 서게 해주지 않고 곁에 서게 도와준다는 아름의 말처럼 그들은 지나온 과거로 힘들어하는 서로의 곁을 묵묵히 지켜주며 따스한 위로를 주고받는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좌절과 후회로 물든 인생에서 느껴지는 다양하고 짙은 외로움을 인물들을 통해 담백하게 보여줌으로써, 인생은 즐거움만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어떤 부분들은 고통과 고독으로 채워져 있다는 불편하지만 솔직한 삶의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자기를 들여다보는데 능한 사람은 책 한 권으로도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자꾸 자극을 받다 보면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을 솔직히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난 믿어요’ 영주의 입을 빌려 전하는 이 말처럼 아픔으로 얼룩진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외면하고 싶어 마음속 가장자리에 밀어 두었던 우리 자신의 감정들과 마주하게 되는 시간이 찾아온다. 

 


누군가부터 상처받았던 순간들. 세상 앞에 꺾여 절망했던 날들. 어두운 밤 기척 없이 불쑥 찾아오던 외로움까지. 소설 속 이야기들로부터 상기된 이러한 감정들은 우리를 어둡고 깊은 우물 속으로 끌어내리려 한다.


 하지만 이야기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낯선 위로를 경험하기도 한다. 힘든 시간을 지나왔고 지금도 지나고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안도감이 주는 위로가 그것이다. 



휴남동 서점은 이렇게 우리들 마음의 짐을 조금씩 덜어내어 우리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준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삶의 시간 속에서 가슴이 벅찰 만큼 값진 날들을 맞이하는 순간은 찰나와도 같다. 즐거운 날들 또한 가뭄에 단비처럼 우연한 기회에만 우리를 찾아온다. 결국 삶 속 대부분의 나날들은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과 위로의 말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들이지만 우리는 매 순간을 누군가와 함께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당신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 줄 많은 책들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책을 품은 친절하고 따스한 서점이 있다.      



누군가의 온기가 그리워진다면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서보자. 어딘가에 있을 휴남동 서점과 그곳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 속에서 우리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을 영주와 민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반갑게 인사하는 영주와 정성스럽게 내린 따뜻한 커피를 내어주는 민준을 보며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서점과 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든 위로받을 수 있다.     



비록 고통 안에 놓인 삶이지만 우리는 함께 불행하기에 행복할 수 있다는 생경한 위로를 머금은 이 책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삶이 버겁고 힘들게 느껴질 때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안정시켜 줄 뜨개질로 누군가에게는 맥주 한 모금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그윽한 향을 품은 따뜻한 커피로 다가올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개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