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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Feb 22. 2021

자궁, 조용한 장기가 아닌데?

내 몸의 신호등이 된 자궁

두 번째 자궁경부암 추적검사 시기가 슬슬 돌아오고 있었다. 달력으로 지나가는 날짜도 날짜지만 내 몸이 병원을 한 번쯤 갈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부터 안 좋았던 컨디션이 며칠을 자고 일어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유치원 때 앓았던 홍역을 빼놓고는 병원에 입원할 만큼 아팠던 적이 없었기에 갑자기 찾아온 아픔이 너무 낯설었다. 좀처럼 친해질 수 없는 증상을 따라 기분도 감정도 좋지 않았다. 


여태껏 내 몸이 기억하는 생리는 지난 이 주간 몸에 머물던 자궁벽이 허물어지면서 나오는 생리혈 덕분에 개운하고 가벼웠다. 하지만 이번 생리는 뻐근하고 묵직했다. 생리를 시작한 지 셋째 날 점심으로 먹은 우동을 기점으로 컨디션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미간이 핑 도는 느낌이 들었고, 마치 몸에서 피가 빠져나간다면 이런 감각이지 않을까 싶었다. 곧바로 약국에 들러 증상을 말한 뒤 철분제를 사 먹었는데, 먹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이번 생리는 왼쪽 난소에서 난자가 나온 것 마냥 왼쪽 골반 안쪽과 고관절이 당기는 증세가 지속되었다. 게다가 눈은 또 왜 그렇게 시린지. 노트북이든 아이패드든 휴대폰이든 화면만 보면 바람 부는 벌판에 눈알만 알몸으로 서있는 것 같았다. 


지난해 <이상 소견이 있습니다>를 독립출판물로 만든 만큼 산부인과와 조금 친해진 덕분에 생리가 끝나야 검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는 생리가 끝나길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점점 끝을 향해가는 생리와 달리 내 몸은 가만히 누워있어도 다리가 저려 올 만큼 이상했다. 뭔가 정상에서 멀어진 느낌으로 며칠을 더 보내다가 드디어 병원에 갔다. 


책 한 권을 만든 게 무슨 자신감을 주었는지 그 어느 때보다도 편하게 코디네이터 선생님과 증상에 대한 일차 상담을 했다. 책과 더불어 실비보험도 공부해 둔 덕분에 병원비 걱정 없이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검사 패키지 A세트인 HPV / 자궁 확대경 촬영 / 세포진 검사 / 자궁 초음파까지 풀세트로 받았다. 불과 일 년 전 만해도 실비 보험비 청구하는 과정을 어렵고 귀찮아하던 나였는데, 이번엔 달랐다. 쿨했다. 모든 경험은 다 배울 것이 있다는 말처럼 내겐 작지만 작은 발전이었다.


병원 기록에 따르면 나머지 검사는 지난번 자궁이성형증 진단을 받을 때 한 번씩 다 했고, 자궁초음파 검사만 오 년 만에 진행하는 것이었다. 산부인과 진찰대에 앉는 것도 여러 번 하니까 익숙해지는지 순식간에 검사가 끝났다. 다만 어떻게 받았는지 과거의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 자궁초음파 검사는 조금 달랐다. 질 입구로 초음파 기구를 밀어 넣자 양 옆으로 벌리고 있는 다리 안쪽 근육에 나도 모르게 힘이 쭈욱 들어갔다.


“긴장 푸세요”
“네... (선생님, 저 긴장 하나도 안 했는데, 그냥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거예요)”
“생리통 심하세요?”
“아니요. 지금까지 생리통은 거의 없었고, 있다고 하더라도 진통제 먹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혹이 있네요?”
“네???”


자궁에 혹이 생겼다고 한다. 크기는 2센티. 내 통증은 거의 왼쪽이었는데 마침 혹도 왼쪽 부근에 위치했다. 와우. 말로만 듣던 자궁근종이 나에게도 생기다니. 어쩌면 그전부터 있었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초음파 검사와 세포진 검사, HPV 검사는 다 타깃이 다른 검사다.) 선생님께서는 사이즈가 작아서 지금은 제거할 것도 없고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사실 자궁 크기는 킬이 7.5센티에 폭이 5센티 밖에 안되는데 거기서 2센티라 하니 내겐 뭔가 큰 게 아닐까 싶기는 했다) 통증의 근원지라고 속 시원하게 결론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플 이유가 있던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나머지 검사는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결과가 나오기에 당장 알 수 있는 건 초음파뿐이었지만 그래도 글을 쓰면서 자궁질환 정보도 많이 찾아보고 자궁근종이 있는 분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던 터라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어쩌면 지난봄에도 있었는데 초음파 검사를 안 했으니 내가 몰랐던 것일 수도 있다. 그저 딱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한편으로는 미세하게나마 스스로 몸 상태를 인식하는 감각이 생긴 것 같다는 긍정적인 생각도 들었다. 


더불어 진료를 보신 선생님께 <이상 소견이 있습니다>를 선물해드렸다. 선생님께서 첫 진료 때 자궁경부를 빨간 사과에 비유하셨는데, 영감을 받아 표지에 사과를 가득 그려 넣었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어쩜 그런 걸 다 기억하시냐면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부터 여성의 몸은 사과와 많은 연결고리를 갖고 있지 않냐며 뿌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책을 이리저리 훑어보셨다. 


혹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래도 시간 순서상 선생님께 칭찬을 받으며 진료를 마무리한 터라 병원을 나오는 발걸음이 많이 무겁지는 않았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있다는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겠지. 몸으로 담보로 하는 경험이라 안전성 항목에는 빨간불이 들어온 기분이지만, 나는 분명 또 잘 극복하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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