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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Feb 22. 2021

요즘의 삶

추적검사 후 다시 3개월 뒤 일상

요즘 내 일상은 스멀스멀 1차 자궁경부암검사를 하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든다. 튀기지 않고 말렸다는 건면 컵라면을 조금 자주 먹기 시작했고, 근 한 달간은 겹치기로 잡은 외주작업에 여러 마감을 쳐내느라 며칠이나 아침이 가까워진 새벽에 잠을 잤는지 모른다. 또 부모님 댁이 있는 울산으로 출장을 갔을 때는 눈꺼풀에 뭐가 들어간 줄 알고 한참 면봉으로 이물질을 떼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딱딱하게 굳은 다래끼가 잡힌 것이었다. 어찌나 당황스러웠는지 그날 밤 아버지 몰래 냉장고 속에 있는 피로회복과 간 기능 개선에 좋다는 아버지의 우루사를 한 알 먹었다. 


여전히 나는 즉석식품을 먹고 맥주를 마신다. 무리한 스케줄인 걸 알지만 먹고살기 위해 다양한 외주작업을 하느라 불규칙한 수면시간을 가진다. 일주일에 다섯 시간 이상 요가 수업을 하지만, 개인 수련은 한주 내내 못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전보다 조금 더 세심하게 내 몸이 말하는 신호를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흐트러진 자세로 있다가도 턱을 당기면서 뒷목을 늘리고 귀와 어깨가 멀어지도록 어깨를 끌어내리면서 날개뼈를 조이고, 복부에 힘을 주면서 복부를 등과 가깝게 당겨 복부와 고관절 사이에 골반이 숨 쉴 공간을 만드는 바른 자세를 틈틈이 취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겨난 관심사를 따라 몸에 관한 책도 읽게 되었다. 확실히 자궁을 예전보다 더 성의 있게 관심을 두고 살펴보았다. 그것만으로도 내 자궁은 조금 달라진 것이 분명했다. 


또 조금 용감해졌다. 꾸준히 몸을 들여다보고 국가에서 우편물이 오는 대로 정기검진을 받는다면 당장 이상세포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쫄 필요가 없었다. 우리 몸은 충분히 기다려주고, 최대한 스스로 치유해보려고 노력한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 제대로 알지 못해서 자궁경부암검사를 받고 이상세포가 발견되었다는 말에 투병생활이니 병자니 환자니 하며 한동안 나 자신을 얼마나 괴롭혔나 싶다. 앞으로는 신선처럼 무던하고 덤덤하게 내 자궁을 들여다봐야지. 


짐작하건대 내가 모르고 있는 동안 내 자궁은 인유두종바이러스에 여러 번 감염되고 이상세포 병변이 표피에서 떨어지길 몇 번이나 계속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운이 좋게 검사에서 이상세포가 걸린 것이고, 연초가 아니라 여름에 검사했다면 정상 결과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랬다면 난 자궁을 돌아볼 생각도 못 했을 것이고, 여전히 자궁을 세심하게 바라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알게 된 건, 내가 서른이 되도록 자궁건강에 정말 무지했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잘 몰라서 이상세포가 발견되었다는 말에 세상이 무너진 것 마냥 슬펐다. 하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마치 바이오리듬처럼 자궁의 컨디션을 살피고 조금 더 건강하게 생활하려고 노력하면 좋아진다. 그저 자궁이 잠시 나를 좀 살펴봐 달라고 말하는 신호로 받아들이면 된다. 


자궁은 조용한 장기인만큼 다양한 시그널을 보낸다. 한 달에 한 번 겪는 생리부터 매일매일의 팬티 상태, 복부와 골반의 컨디션이 자궁의 상태를 담당한다. 이 모든 것을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꾸준히 들여다본다면 더 건강하고 튼튼한 자궁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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