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희망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일이라곤 간절함과 소망을 담아 빌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동화책을 덮고 ‘부의 추월차선’ 같은 세속적인 책을 읽는 어른이 된 후로, 나는 세상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으로 깨달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간절함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한 살, 한 살 먹어간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하나씩 늘어가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런 사실을 6살 겨울에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해 나는 내 인생 최초의 장기프로젝트를 실천 중이었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아래 집 진영이한테 자전거가 생기면서부터였다. 맨날 함께 걸어 다니던 친구가 갑자기 자전거를 타고 나온 모습은 미취학 아동인 나에게는 견딜 수 없이 부러운 일이었다.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부모님은 들어주지 않으셨고, 결국 내가 기댈 곳은 한 명, 산타 할아버지뿐이었다.
우선 할아버지가 사는 곳을 알고 있다는 엄마 편으로 매일 편지를 부쳤다. 편지에는 나한테 얼마나 자전거가 필요하고, 또 자전거가 생기면 내가 얼마나 착한 어린이가 될 것인지를 구구절절 적었다. 편지와 동시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울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면 내가 가진 산타 할아버지에 대한 유일한 단서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주지 않으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풍노도의 인생 6년 차 남자아이에게 세상은 울 일투성이었다. 대들었다는 이유로 누나한테 뒤통수를 맞아서 울었고, 학원 숙제를 안 해서 한 시간 동안 손 들고 있을 때도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래도 눈물이 나오려 할 때마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버텼고, 어김없이 그런 내 노력을 편지에 적었다. 울긴 했지만 그래도 산타할아버지가 내 노력을 가상하게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대망의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머리맡에 내가 가진 양말 중 가장 큰 양말을 매달아 뒀다. 그리고 다른 한 짝은 자전거가 무거워서 우리 집까지 못 들고 오실 것을 걱정해 1층 자전거 보관소에 걸어뒀다. 이미 마음은 자전거를 받은 듯이 설렜다. 내일 바로 진영이 녀석을 불러서 새 자전거를 자랑해줄 생각에 덮어쓴 이불 밖으로 웃음이 새어 나갔다. 이렇게 내가 뒤척이고 안 자면 산타할아버지가 못 오신다는 말을 듣고서야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확인해본 양말에는 자전거 대신 롤러스케이트가 들어있었다. 사실 선물이 무엇인지는 전혀 중요치 않았다. 나에겐 그것이 자전거가 아니라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난 일 년 동안 꾸역꾸역 참았던 눈물을 그날 모두 토해내듯 쏟아냈다.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욕들로 산타할아버지를 저주했고, 그 말을 들은 엄마에게 혼나서 또 울었다. 6살 크리스마스는 저주와 눈물로 얼룩진 날이었다.
눈물자국이 마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몇 번의 좌절을 더 경험한 뒤였다.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숱한 상황들을 겪으면서 나는 산타 할아버지를 용서해주기로 했다. 반복되는 좌절과 실망을 통해 모든 일이 원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는 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같이 매일 새로운 소원을 빌고 실망하길 반복하며 살았다. 혈기 왕성한 학창 시절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 대부분은 ‘미안…’으로 시작했고, ‘좋은 친구’로 끝났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날 싫어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다. 또 초등학생 때부터 빌었던 통일이 돼서 군대를 안 가게 해 달라는 소원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덕분에 2022년, 나는 어느새 11년 차 민방위 대원이 됐다. 최근에는 통장 잔고를 확인해보니 새해에 빌었던 부자 되게 해 달라는 소원도 가망이 없어 보여 내 머리를 지끈거렸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지만, 나는 소원 빌며 산지 30여 년째에도 여전히 소원 달성 비법 같은 것은 깨닫지 못한 채 나이만 먹었다. 다만 실망에 대한 내성만큼은 굳은살처럼 두껍게 생겼다. 이제는 원하는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울지 않고,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마냥 슬퍼하지 않는다. 사랑만 받고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미움을 받아도 애써 웃어넘길 수 있는 노련함도 생겼다.
그러니까 인생은 간절하게 살기보다는 매주 복권 한 장 사는 기분으로 가볍게 지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복권이 당첨되길 원하지만, 동시에 ‘안되면 또 사면되지’라는 조금은 허술한 마음을 갖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연말에는 어딘가 살짝 부족해 보이는 마음으로 긴장감 없는 소원을 빌어야겠다. 되면 좋지만, 안되면 내년에 또 빌면 되니까.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소원을 붙잡고 울며 스트레스받기엔 내 시간이 너무 아깝다. 모르긴 몰라도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단 주변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할 확률이 더 높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작년에는 50억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이번엔 소박하게 10억만 벌게 해달라고 소소한 소원을 빌기로 했다. 안되면 내년에 또 빌어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