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COMFY Dec 22. 2022

허술한 마음과 느슨한 소원

아니면 말고의 정신으로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희망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일이라곤 간절함과 소망을 담아 빌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동화책을 덮고 ‘부의 추월차선’ 같은 세속적인 책을 읽는 어른이 된 후로, 나는 세상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으로 깨달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간절함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한 살, 한 살 먹어간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하나씩 늘어가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런 사실을 6살 겨울에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해 나는 내 인생 최초의 장기프로젝트를 실천 중이었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아래 집 진영이한테 자전거가 생기면서부터였다. 맨날 함께 걸어 다니던 친구가 갑자기 자전거를 타고 나온 모습은 미취학 아동인 나에게는 견딜 수 없이 부러운 일이었다.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부모님은 들어주지 않으셨고, 결국 내가 기댈 곳은 한 명, 산타 할아버지뿐이었다.
우선 할아버지가 사는 곳을 알고 있다는 엄마 편으로 매일 편지를 부쳤다. 편지에는 나한테 얼마나 자전거가 필요하고, 또 자전거가 생기면 내가 얼마나 착한 어린이가 될 것인지를 구구절절 적었다. 편지와 동시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울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면 내가 가진 산타 할아버지에 대한 유일한 단서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주지 않으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풍노도의 인생 6년 차 남자아이에게 세상은 울 일투성이었다. 대들었다는 이유로 누나한테 뒤통수를 맞아서 울었고, 학원 숙제를 안 해서 한 시간 동안 손 들고 있을 때도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래도 눈물이 나오려 할 때마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버텼고, 어김없이 그런 내 노력을 편지에 적었다. 울긴 했지만 그래도 산타할아버지가 내 노력을 가상하게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대망의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머리맡에 내가 가진 양말 중 가장 큰 양말을 매달아 뒀다. 그리고 다른 한 짝은 자전거가 무거워서 우리 집까지 못 들고 오실 것을 걱정해 1층 자전거 보관소에 걸어뒀다. 이미 마음은 자전거를 받은 듯이 설렜다. 내일 바로 진영이 녀석을 불러서 새 자전거를 자랑해줄 생각에 덮어쓴 이불 밖으로 웃음이 새어 나갔다. 이렇게 내가 뒤척이고 안 자면 산타할아버지가 못 오신다는 말을 듣고서야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확인해본 양말에는 자전거 대신 롤러스케이트가 들어있었다. 사실 선물이 무엇인지는 전혀 중요치 않았다. 나에겐 그것이 자전거가 아니라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난 일 년 동안 꾸역꾸역 참았던 눈물을 그날 모두 토해내듯 쏟아냈다.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욕들로 산타할아버지를 저주했고, 그 말을 들은 엄마에게 혼나서 또 울었다. 6살 크리스마스는 저주와 눈물로 얼룩진 날이었다.

눈물자국이 마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몇 번의 좌절을 더 경험한 뒤였다.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숱한 상황들을 겪으면서 나는 산타 할아버지를 용서해주기로 했다. 반복되는 좌절과 실망을 통해 모든 일이 원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는 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같이 매일 새로운 소원을 빌고 실망하길 반복하며 살았다.
혈기 왕성한 학창 시절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 대부분은 ‘미안…’으로 시작했고, ‘좋은 친구’로 끝났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날 싫어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다. 또 초등학생 때부터 빌었던 통일이 돼서 군대를 안 가게 해 달라는 소원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덕분에 2022년, 나는 어느새 11년 차 민방위 대원이 됐다. 최근에는 통장 잔고를 확인해보니 새해에 빌었던 부자 되게 해 달라는 소원도 가망이 없어 보여 내 머리를 지끈거렸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지만, 나는 소원 빌며 산지 30여 년째에도 여전히 소원 달성 비법 같은 것은 깨닫지 못한 채 나이만 먹었다. 다만 실망에 대한 내성만큼은 굳은살처럼 두껍게 생겼다. 이제는 원하는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울지 않고,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마냥 슬퍼하지 않는다. 사랑만 받고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미움을 받아도 애써 웃어넘길 수 있는 노련함도 생겼다.
그러니까 인생은 간절하게 살기보다는 매주 복권 한 장 사는 기분으로 가볍게 지내는 것 좋지 않을까 싶다. 복권이 당첨되길 원하지만, 동시에 ‘안되면 또 사면되지’라는 조금은 허술한 마음을 갖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연말에는 어딘가 살짝 부족해 보이는 마음으로 긴장감 없는 소원을 빌어야겠다. 되면 좋지만, 안되면 내년에 또 빌면 되니까.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소원을 붙잡고 울며 스트레스받기엔 내 시간이 너무 아깝다. 모르긴 몰라도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단 주변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할 확률이 더 높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작년에는 50억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이번엔 소박하게 10억만 벌게 해달라고 소소한 소원을 빌기로 했다. 안되면 내년에 또 빌어야지 뭐~

작가의 이전글 일상으로의 초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