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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COMFY Jun 28. 2022

참을 수 없이 불편한 존재


아무리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참지 못하는 일들이 인종 차별이나 지구 온난화 같이 대의를 위한 일은 아니다. 소심한 나는 작디작은 일들에 대해서만 선택적 불편함을 느낀다. 예를 들면 손가락 끝 위로 애매하게 자란 손톱이라든가, 앉았을 때 배가 접히는 기분 같은 것들 말이다.


그중에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어색한 정적을 마주할 때다. 분명 입이 있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대화가 없는 상황. 난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움찔거리곤 한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자리라든가, 어색한 자리라면 나 자신이 불편하지 않으려 정적 속으로 아무 말이나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다행스럽게도 MBTI가 '재기 발랄한 활동가'인 덕분에 대화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진 않는다. 여기에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서비스직 특유의 직업병까지 더해져 무례함을 느끼지 않는 '선'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나간 소개팅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옆집 오빠같이 편해'라는 말이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나와의 대화가 아예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근거 없는 자신도 있다. (소개팅이 성공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확신과 침묵보단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낫다는 생각으로 나는 항상 침묵을 깨며 살았다. 그러다 한 분의 대리기사님을 만났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날이었다. 술을 마실 생각은 없었지만, 마스크 없는 친구들 얼굴은 그 자체로 훌륭한 술안주였다. 한 잔, 두 잔 넘어가는 술잔에 못다 한 이야기를 섞어 마시다 보니 모두 금방 취했다. '야~~ 하 자~~ 더해자~~.'라고 말하는 친구를 택시로 밀어 넣고 나도 대리기사님을 맞았다.

그날 기사님은, 유독 말이 없는 분이셨다. 만나서 차에 타기까지 나눈 대화라고는 '****차주분 맞으시죠? 안녕하세요. 타시죠.'가 전부였다. 조금만 방심해도 가는 내내 어색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털털털


할아버지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2004년형 그랜저에 시동이 걸렸다. 이에 뒤질세라 나도 '20만 킬로 넘게 탄 차라 소리가 이상하네...'라는 혼잣말로 토크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기사님은 할아버지 가래 소리나 내 혼잣말은 안 들린다는 듯 묵묵히 정면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어색함의 침공을 막기 위해 나는 부단히 준비한 레퍼토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제가 마지막 손님인가요? 댁이 근처시면 저 내려주시고, 기사님도 퇴근하시면 좋은데.'

'그래도 요즘은 엔데 믹이라 손님 좀 늘었죠?

‘노래 좀 틀까요? 듣고 싶은 노래 있으세요?

'새벽에 운전하다 졸리시면 깨는 팁 같은 게 있으세요?'


본인의 짧은 대답에도 지치지 않고 질문하는 내 노력이 가상했는지 기사님도 한 단어, 한 단어씩 길게 대답해주시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몇 번의 대화가 오고 간 뒤, 집까지 절반이 남은 시점에 기사님께서 처음으로 먼저 말씀하셨다.


“부럽네요”


느닷없이 부럽다니. 만약 누군가 대리기사님에게 들을 수 있는 말에 순위를 매긴다면 제일 마지막에 뽑힐 것 같은 말이 아닌가. 당황한 내 표정을 본 기사님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대리 일도 서비스니까. 타는 손님들한테 친근하게 대하고, 이 얘기, 저 얘기하면 좋잖아요. 근데 저는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낯도 많이 가리고, 말주변도 없거든요. 손님이 타면 떨린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손님처럼 편하게 말씀하시는 분들 보면 부러워요.”


기사님은 지금까지 만취 손님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가끔 욕도 하고, 깨워도 안 일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만취 손님은 차에 타자마자 기절하니까. 그렇게 대화를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없이 혼자 조용히 운전하는 순간이 본인은 너무나 편하시다며 멋쩍게 웃으셨다.

갑자기 차 안을 맴돌던 내가 뱉은 말들이 사정없이 나를 때리는 듯 온몸이 욱신거렸다. 부끄러워서인지 아니면 술기운 때문인지 얼굴도 화끈거려 조용히 창문을 열었다. 기사님은 손님 같은 분이라면 부산까지도 같이 가겠다며 나를 달래주셨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끄러움과 죄송함은 내 몫으로 남아있었다.


아, 나는 얼마나 오만하고, 이기적인 손님이었던가. 나 편해지자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떠넘기고, 내가 편하면 상대방도 편할 거라고 마음대로 생각했다. 나는 기사님에게 애매하게 자란 손톱이었고, 두둑이 접히는 배였다. 당신의 편함을 방해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매일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며 취향 존중을 최우선 가치인 양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결국 내 다름만 선택적으로 인정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단 사실이 그날의 드라이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주차를 마친 뒤, ‘즐거웠다’는 기사님의 인사를 나는 ‘죄송합니다’라는 사죄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멀어져 가는 기사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음 손님은 적당히 만취한 손님을 만나 편안한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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