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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고 살리고 Feb 13. 2020

사회는 사람 하기 나름이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오찬호, 블랙 피시, 2018)

                                                                                                                                   

어느덧 40대가 되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나만 생각했던 20대.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나의 모습을 볼 여유조차 없었던 30대가 숨 가쁘게 지나갔다. ‘학부형’이 되어서야 내가 살고 있는, 내 아이들은 더 오래 머물게 될 이 사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만 잘 키운다고 잘 자랄 수 없다는 사실을 학교에 보낸 후 체감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좀 더 건강한 사회에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이제야 들었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자신의 저서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블랙 피시, 2018)를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매뉴얼이라고 소개한다. 사회문제 해결은 정치인이나 고위직 공무원의 고유 업무 정도로 생각해서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여기거나 뒤늦게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평범한 시민들을 위한 “일종의 사회학적 자기 계발서”다.


매뉴얼의 기본은 기준과 순서다. 이 책이 매뉴얼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좋은 사람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순서를 정의했기 때문이다.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시작이지 않겠는가. “사회는 사람 하기 나름”(p.220) 임을 강조한다. 내 주변에 있을 법한, 한 번은 당해봤을 법한 이야기를 통해 자아 성찰의 기회를 준다. 제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 고의든 의도하지 않았든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자신의 성공이 타인의 희생이나 배경 덕임을 모르고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 된 줄 아는 사람, 강박에 쫓겨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 자신의 가치관을 권하며 상대를 모욕하는 사람 등을 비판하여 혹여나는 이런 적이 없었나를 되짚어 보게 한다. 


사회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다. 저자는 사회학을 연구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상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됨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무심코 한, 그냥 지나치는, 당연하게 여기는 말과 행동에 깊이 뿌리 박혀 인식조차 못 하고 있는 혐오, 차별, 폭력을 세세하게 짚어낸다. 좀비 놀이는 장애인의 모습을 흉내 낸 것. 교사가 왕따를 당할 수 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할 때 가해자 훈육보다 ‘누가 피해자가 될 행동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 이러한 사례들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무심히 지나쳤을법한 일이다.


사회학에서 다루는 주제는 어렵지 않다. 바로 나와 이웃의 이야기다. 저자는 한국에서 만연 층간 소음의 사례를 든다. 층간 소음을 일으킨 장본인이 ‘내가 내 집에서 내 맘대로 걷지도 못하고 그쪽 눈치까지 봐야 되냐’는 대답을 하는 경우가 있다. 저자는 이를 빗대어 유독 한국에서 가장 남용되는 것이 ‘사적 재산권’이라 꼬집는다. “사적 재산‘권’은 그것이 자기 것이라는 뜻이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지 않는다.”(p.22) 돈이면 다 된다고 여기는 현대인이 꼭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다. 


저자는 노키즈존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백번 물어도 노키즈존은 ‘혐오’라고. 노스모킹존과 비교해 이것은 담배를 피우는 공간을 따로 두지 흡연자의 출입을 금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키즈존의 이유가 어른의 생명 지장도 아닌 단지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 이유라니. 어른의 불편함을 권리로 착각하는 것이다. 왜 유독 아이에게 그럴까. 만만해서다. 장애인 시설을 반대하는 이유 또한 그렇다. 동네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가 주된 목적이지만 이는 숨긴다. (행정구역 상의) 공동체를 위한 행동이라면서 그보다 더 큰 ‘인류애’는 찾아보기 힘들다. “‘연민’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라는데 틀린 말이다. 사람들은 상대를 가려서 연민한다.”(p.32) 부끄러운 우리의 민낯이다. 


사회는 사람 하기 나름이지만 산다는 건 사람 하기 나름이 결코 아니다. “개인이 아무리 간절해도 꿈을 이루지 못한 ‘평균치’가 함의하는 객관적인 불평등”(p.40)이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불평등이 사라진 좋은 사회가 됐을 때야 산다는 건 사람 하기 나름이 가능하다. 나쁜 사회일수록 개인의 노력과 의지, 자신감, 긍정의 힘을 강조하고 실패의 원인을 이것에서 찾는다. 책 한 권 읽는다고 사회가 금세 바뀌진 않겠지만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뭐라고 해야겠다는 의지가 꿈틀댄다면 이 책을 권한다. 이들이 모이면 하나 정도는 괜찮아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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