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사춘기』(김경집, 푸른들녘, 2019)
‘언어 사춘기’란 아이의 언어에서 어른의 언어로 넘어가는 중간 시기를 말한다. 이는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문학자 김경집은 『언어 사춘기』(푸른 들녘, 2019)에서 그 중요성을 설파한다. 최근 뇌 과학자들과 교육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 ‘언어 사춘기’가 실제로 어른의 언어를 습득하는 데 있어 효율성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렇다면 언어 사춘기는 언제일까. 초등학교 4학년이 분기점이 된다. 보통 초등학교 저학년은 1~3학년, 고학년은 4~6학년으로 나뉜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단어만 봐도 이 시기는 감각의 언어에서 사색의 언어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동네 개울에 올챙이가 나타났어요. 친구들과 함께 살펴보고 이야기를 나눠보세요."와 같은 문장이 "우리 동네 하천에 올챙이가 나타났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관찰하고 토론해봅시다."(p.65)로 바뀐다. 주로 일상적인 단어가 개념과 관념어로 바뀐다. 이를 해석하기 위해서 뇌는 1차적으로 함축된 단어의 뜻을 풀어내어야 하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뇌가 확장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시기에 긴 호흡의 문장을 소화하고 사색의 어휘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제 삶의 미래를 당당하게 결정하게 될”(p.73) 것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먼저, ‘언어 사춘기’란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몸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사춘기에 부모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부모들은 인지하고 있고 미리 대비한다. 하지만 어른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언어 사춘기에 대해서는 생소하다. 저자 자신도 아이들을 키울 때는 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최선의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의식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언어 교육의 적기를 이해하고, 그 시기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부모가 몸의 변화보다 일찍 찾아오는 자녀의 언어 사춘기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두 번째로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그 중요성을 역설한 점이다. 그 어떤 AI도 언어로는 결과값을 표현할 수 없다. 모든 소프트웨어는 수를 통해 데이터와 결과 값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빅데이터를 걸러 합리적인 정보를 선별하고 바람직한 가치를 부여하여 큐레이팅 하는 주체는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 인간인 것이다.
“그 사람의 말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p.57) 내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방법은 모두의 예상대로 ‘독서’다. 저자 또한 억지로 책을 읽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만큼은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 ‘개천에서 욕만 나오는’ 척박한 교육 현실에서 독서만이 말의 외연을 확장하고 다양한 사유 방식을 훈련하는 중요한 통로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책은 부모라면 누구든 읽어야 하지만 다음은 예외다. 상속세를 걱정해야 하는 부모와 밤새 책을 읽어서 이를 말려야 하는 아이를 둔 부모다. 모두 가지면 곤란하니까. 과거 교육 방식에 매달려 아이를 학원에 돌리는 방임형 부모, 아직도 대학 입시가 유일한 신분 상승의 기회라 믿는 순진한 부모, 내가 받은 혜택보다 자식에게 해주는 게 훨씬 많으니 자식들이 당연히 잘할 것이라 믿는 투자자 부모에게 권한다.
정작 나는 어른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아이들의 말에 ‘대박!’, ‘짱!’, 또는 ‘짜증 나!’로 정제 없이 반응하며 감정과 느낌과 기분을 축약해 그만큼 내 삶을 버리고 있진 않은가. 나는 소중하다고 외치면서 생활 대부분을 차지하는 언어 소비와 생산에 있어 과하게 게을렀음을 인정해야겠다. 더 많이 읽고 더 부지런히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