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리고 살리고 Sep 05. 2019

보통사람은 평화를 원한다.

<어느 평화주의자의 이야기>(도쿠나가 히로아키, 책늘, 2019)

아베의 경제보복으로 인해 우리 집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남편이 근무하는 회사가 일본 회사이기 때문이다. 입사할 땐 분명 씨J였는데 일본이 조금씩 회사를 인수했다. 다르게 표현하면 씨J가 지분을 팔았다. 국내 기업으로 시작해서 공장도 연구소도 한국에 있다. 대부분의 제품은 '메이드 인 코리아'지만 일본 브랜드가 자명하므로 일본 기업인 것이다.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에 매일 대책을 강구하느라 고생인 남편을 보면 너무 안쓰럽다. 우리 가정의 생계가 걸린지라 힘들면 그만두라는 말도 쉽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난 7 일레븐의 사장님을 볼 때도, 구몬 학습지 선생님들을 볼 때도 다르게 보인다. "힘드시죠?" 하고 말이라도 건네고 싶다. 이번 사태가 없었으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전혀 문제없이 지냈을 이들이다. 아베 경제보복 조치로 인한 불매운동의 불똥이 엉뚱한 소시민에게 튀는 게 우려되어 복잡한 심정이 되고 만다.

이런 나에게 큰 위로가 된 책이 있다. 도쿠나가 히로아키 <어느 평화주의자의 이야기>(책늘,2019)이다. 그는 30년 전 한국으로 건너왔다. 도쿄에서 법학 공부를 하던 그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한국에서 무엇을 했는지 꼭 알고 싶어 한국행을 결심했다. 유학 중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해 지금은 22년째 충청대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 책은 그가 2012년부터 충청 일보에 게재했던 칼럼의 원고를 모은 것이다. 일어를 번역한 것이 아니다. 한국어로 쓴 글이라 번역가의 필터가 개입되지 않았다. 일본어만 가르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이 뛰어나고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역사 및 세계 정치 현안을 보는 시선이 날카롭고 적확하다. 마치 종영한 예능프로 '비정상회담'에서 한국말을 우리보다 더 잘하던 '타일러' 급 패널의 글을 보는 것 같다. 아니 그보다 한 수 위다. 일본과 한국을 모두 자신의 국가라고 말하는 그는 비판에 치우침이 없기 때문이다.

"Stop Abe!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베 당신을 규탄하고 거부한다.(p.174)"

"그런데도 대한민국호 선장인 대통령이란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며칠 째 '선장실'에 틀여 박혀 나오질 않는다. '비정상의 정상화', 누가 했던 말인가? 후안무치, 허탈하고 분노마저 치밀어온다."(p.120)

겁 없는 그의 비판에는 이유가 있다. 증오와 몰이해의 역사를 되풀이한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역사에 대해 철저한 검증과 평가를 마치고 진정한 사과와 손해배상의 절차를 밟은 후 대등한 파트너로 거듭나 동아시아를, 아니 더 나아가 세계를 리드하는 진정한 라이벌이 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두 나라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일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일 대학생 교류회', '한일 역사 심포지엄'과 같은 공식 행사를 비롯해 제자들을 위해 취업 자리를 발굴할 때다. 직접 인사 담당자를 만나 "우리 제자, 정말 착하고 일 잘하니 잘 부탁합니다."(p.195)라고 인사하면 정 많은 한국인은 손사래를 치면서도 열 번 중 두 번은 마지못해 채용해 준다고 한다. 자기 자식을 위해서도 쉽지 않은 행동이다. 그 사랑의 마음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점점 빠져드는 책이다.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으로 인한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이를 영구히 포기한다."(p.160)

지난 5월 2일, 이 조항을 포함한 일본 헌법 제9조가 노벨 평화상 후보로 3년 연속으로 수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베 정권은 출범 직후부터 이 평화헌법을 훼손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보통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며 보통국가란 다름 아닌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란 뜻이다. 우리나라를 겨냥한 경제 보복도 무역전쟁의 시발(동음이의어. 두 뜻 다 의미함)인 셈이다.

저자는 말한다. "일본이 영구적으로 전쟁을 포기한 것은 단편적으로 보면 패전의 결과였으나 그것은 결코 창피도 수치도 아닌 평화를 갈망하는 인류 소원의 결정체(結晶體)이다."(p.162) 사람이 아닌 헌법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정된 건 그만큼 이러한 사상이 중요한 시대임을 반증한다.

'보통 국가'는 '보통 사람'들의 국가이다. 보통 사람인 나는 평화를 갈구한다. 아베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길 나도 저자도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도 바랄 거라 믿는다. 미움과 증오가 화살이 되어 누구든 꽂히면 사지로 몰아지는 무서운 시대에 사랑과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책이다. 마음엔 국경이 없다는 글귀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람은 사람을 못 바꾸지만 책이라면 가능하다. 그래서 이 책을 아베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나도 보고 있어도 보고 싶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