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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opal Sep 26. 2020

금기의 감독, 불구덩이에 떨어지다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에


 논란의 거장. 금기를 건드려 아름다운 예술로 만들어내는 작가 겸 감독.  

 덴마크 출신의 영화감독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 1956~)에게 붙는 수식어는 그 수식어마저 자극적이고 강렬하다. 동료 감독들과 모여 도그마 95를 선언을 한 적이 있는 탓에 작가주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인식이 있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우울감에 휩싸여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찝찝함이 계속 남아있게 된다. 실제로 라스 폰 트리에는 인생의 대부분을 우울증에 빠져 살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느낀 감정과 내면의 세계가 정직하게 영화로 표현된 셈이다.  


사진출처: 로이터 뉴스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사람의 심리, 특히나 살인자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지인이 ‘살인마 잭의 집(The House That Jack Built, 2018년 개봉)’을 추천해주었고 그렇게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본 적도 없을뿐더러 그의 색이 짙게 묻어 나오는 최신작을 입문용으로 보고 나니, 궁금증이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 감독은 어떤 작품을 만들어왔길래… 

 그 이후 시간을 거꾸로 거스르며 님포매니악(Nymphomaniac, 2013), 멜랑콜리아(Melancholia, 2011), 안티크라이스트(Antichrist, 2009) 그리고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 2001)까지.  


 그의 작품을 전부 보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웬만한 곳에 가 ‘나 그 감독 영화 좀 봤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사실 감독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을린 사랑, 에너미, 시카리오, 컨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가 시작이다. 그의 경우 영화를 두세 편 보고 나서 감독을 찾아보니 드리 빌뇌브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고, 라스 폰 트리에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살인마 잭의 집을 보고 난 후 이 감독의 세계관과 정신세계(?)가 궁금해 일부러 더 찾아보게 되었다. 대부분이 스토리가 강렬하고 극 중의 연출이나 캐릭터의 설정이 다소 강해 비판의 목소리도 많다. 어둠 속의 댄서 주인공이었던 비요크는 대놓고 착취당했다며 그를 비판하기도 했고,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도그빌의 주인공 니콜 키드먼과는 소리를 지르면서 싸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두 영화는 모두 성공적인 흥행을 했고 모두 극찬을 받으며 인기상을 받기도 했다.  


어둠 속의 댄서 영화 포스터



 그의 영화가 워낙 강렬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는 영화 외로 여러 논란거리가 많은 감독이기도 하다. (사실 논란이 아닌 게 없다) 2011년 칸 영화제 인터뷰 중 “히틀러를 이해한다”라고 말한 것. 물론 이 같은 발언을 하게 된 이유와 더불어 수많은 해명(‘난 나치가 아니다’와 같은)을 이어갔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그를 나치 옹호자로 생각하기도 한다.  


 살인마 잭의 집을 발표한 후 그는 은퇴 선언을 하게 되는데, 그 영화를 보면 그가 일으켰던 수많은 논란을 직접 살인마 잭이 되어 해명하고 설명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잭은 영화 속에서 지옥으로 그를 인도하는 인도자, 버지와 대화를 나누며 살인을 하게 된 이유, 당시의 기분 등을 상세히 설명한다. 이렇게까지 살인마에 대한 심리를 깊게 파고들까 싶을 정도로 심리 비유가 많다. 그의 영화를 드문드문 보고 라스 폰 트리에라는 사람에 대한 논란도 알고 보니, 새삼 다시 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주인공 잭은 강박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우발적이었던 첫 살인을 제외하고 다소 계획적이었던 두 번째 살인에서 잭은 혹시나 집 안에 피가 튀기지 않았을까 이상할 정도로 집착한다. 시체를 처리하고 나고서도 계속 그 집을 치우지 못해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사이 경찰이 다가와 실종된 여인에 대한 질문을 한다. 잭은 빨리 현장을 피해야겠다 생각하며 시체를 차 뒤에 묶어 달아나는데, 집 안을 샅샅이 청소한 것이 무색하게 도주하는 내내 도로에 핏자국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정말 하늘이 도운 걸까. 도로에 난 핏자국을 보며 망연자실해있는 것도 잠시, 곧 하늘에서 우박과 같은 거센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 이후 자신감을 얻게 된 잭. 본격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며 여성과 아이를 마치 사냥에 나선 죽음의 신처럼 가혹하게 살인하고 끝내 남성들을 여럿 모아 한 번에 죽이려는 소위 ‘대학살’을 꿈꾸기도 한다.  


 처음 그 영화를 볼 때는 몰랐다. 감독의 정보도 없이 무작정 보게 된 영화이기도 했고, 영화 속 내용이 다소 기괴해 대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당최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전에 무수히 자기만의 세계를 이미 구축해놓은 감독의 은퇴 작을 그 감독의 첫 영화로 마주한 셈.   


 그의 여러 작품을 본 후 다시 그 영화를 볼까, 그러면 또 느끼는 바가 다를까 싶었지만 그러기엔 영화 속 장면이 아직 머릿속에 생생해 굳이 그걸 눈앞에 다시 펼쳐놓고 싶지는 않다. 기억에 남고, 잊을 수 없지만 남에게 쉽게 추천을 할 수도, 다시 보고 싶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또 두세 번 보기 어려운 영화.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가 딱 그러하다.  


살인마 잭의 집 중 잭의 모습


 그의 은퇴 소식을 듣고 나니 새삼 아쉬운 마음도 든다. 뛰어난 거장,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린 (아. 울리긴 울렸다.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영화계의 대부라는 수식어는 그에게 너무 거창하지만, 분명 다른 감독들은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그 미묘한 사람들의 감정을 스토리로 끄집어내어 작품으로 만든 것만은 분명하다.  


 충분히 보았다고 하기에 그의 세계가 얼마나 깊을지 감히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워 쉽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잭을 지옥에 떨어뜨리고 작품을 마무리 지었다. 어쩌면 충분히 라스 폰 트리에 다운 마무리이다.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처럼 은퇴 선언을 번복해 또 영화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싶긴 하지만, 아마 이미 충분한 논란거리를 만들어낸 그에게는 영화계 자체에 질려버린 걸 수도.  

 그를 만날 기회는 없겠지만, 작게나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덕분에 잘 봤습니다. 지옥에서 편히 쉬며 고통을 잠재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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