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나 예술과 술은 요상한 의미로 많이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예술가들이 창작 행위를 하기 위해 술의 힘을 빌리는 그 단순한 관계뿐만 아니라, 알고 보면 술 그 자체가 예술과 꽤나 깊게 연결이 되어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미학사를 잠시 살펴보면, 예술은 모방을 뜻하는 ‘미메시스(Mimesis)’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플라톤은 그 유명한, ‘예술은 모방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미메시스라는 단어의 기원을 좀 더 살펴보면 그것이 단순한 모방이 아닌, 행위에 적용되는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위에 적용되는 모방. 그 뜻은 무엇일까?
행위에 적용되는 모방은 술의 신으로 잘 알려진 디오니소스를 위한 숭배 의식과 관련해서 처음 등장한다. 우리는 디오니소스를 술의 신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는 이외에도 지하세계에서 사는 자, 사냥꾼, 발기한 자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디오니소스와 관련한 유명한 전승 중 하나는 바로 ‘부활’과 관련된 것이다. 카를 케레니의 <그리스 신화 1: 신들의 세계>에서 ‘그는 포도가 으깨져 포도주로 되살아나듯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신이다’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잠시 디오니소스에 대한 부연 설명을 더 하자면, 그는 ‘신’이었지만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중립적 존재이기도 하다. 그가 부활과 연관 지어 설명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는데, 그가 실제로 인간 세멜레의 뱃속에서 첫 번째 죽음을 맞은 후 신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두 번(Dio) 태어난 자(nysos)란 뜻을 가지고 있는 그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이미 한 번의 부활을 겪은 신과 인간, 그 중간에 위치한 요상한 존재였다. 그래서일까, 인간의 고충을 알기라도 하듯이 헤라의 질투로 먼 지역에서 요정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랄 수밖에 없었던 디오니소스는 우연히 포도주 빚는 법을 알게 되어 술의 힘으로 여러 명의 추종자를 얻게 된다.
그는 음악과 와인, 그리고 춤으로 평범한 인간들을 해방시켜 ‘해방자’라는 의미의 ‘엘레우테리오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특히나 사회에서 소외된 하층민들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었는데, 당시 많은 억압과 분노를 받고 있었던 여성들은 극단적인 모습으로 해방의 광기를 표출하기도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디오니소스를 위한 신앙은 체재 내에 진입하여 축제를 벌이는 형태로 진화하게 되었다. 이렇듯 여성들이 디오니소스 제의 의식에서 그의 부활을 흉내 내며 광기 어린 춤을 추는 행위에서 탄생한 말이 바로 ‘미메시스’이다.
완벽한 신이라기보다 어느 정도 인간의 편에 서 있었던 디오니소스였기에, 엇비슷하게 느껴지는 공감대와 그들이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술이라는 매개체로 다른 신에 비해 광신도를 더욱더 잘 끌어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극장의 원형이 되었던 ‘오케스트라’라는 공터에서 디오니소스 찬가를 뜻하는 ‘디티람 보스’가 자주 이루어지곤 했는데, 디티람 보스 또한 죽었다가 부활하는 사람을 춤으로 흉내 내는 퍼포먼스가 많이 행해졌다.
디오니소스 극장이 시간이 지나 거대한 실내 극장으로 변화한 것을 보면, 디오니소스와 예술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더군다나 비이성적이고 거친 행동을 흉내 냈다는 것이 당시에는 부활을 뜻했지만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해 보았을 때는 ‘술에 취해 비틀대는 사람’, ‘정신이 없는 사람’ 등으로도 보이니, 우스갯소리이지만 사실 술에 취한 모습조차도 당시에는 하나의 예술 분야로 칭해지지 않았다 싶은 생각도 든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절대 행할 수 없는 두 번의 ‘부활’. 그리고 그가 만든 술과 함께 그를 기리기 위해 즐겼던 축제. 이 모든 것이 엮여 현재의 종합예술이 되었다. 술이 문화예술 범주에 속해있지는 않지만, 분명 술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에 지금의 예술의 완성본이 만들어져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술과 함께 즐거운 축제를 즐길 때 이러한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조금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