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의 이단아, 찰스 부코스키
Don’t try.
가끔 웃고 싶거나, 지칠 때 떠올리는 글귀가 있다. 바로 미국의 시인 겸 소설가인 찰스 부코스키의 묘비명인 ‘Don’t try’.
생각할 때마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유쾌한 묘비명이 아닐 수 없다. 작품이 아닌 ‘묘비명’에 끌려 그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고, 그의 작품을 읽고 난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헨리 찰스 부코스키(Henry Charles Bukowski, 1920~1994). 독일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는 소위 ‘하급 노동자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 특유의 거친 문체가 특징이다. 미국의 국영 우편 사업체에서 우편 사무원, 집배원으로 10년을 넘게 일하며 시를 쓰기도 했다. 그 뒤 우체국 일을 그만두고 자전적 소설 ‘우체국’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평생 60권이 넘는 소설과 시집을 펴냈는데, 나는 그중 달랑 2권의 책밖에 읽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은 부코스키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냉소적이고 직설적인 문체 때문이었다. 특히나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Hell is a closed door)’라는 시집을 읽다 보면 웃음과 서러움이 동시에 든다. 툭하면 술, 툭하면 섹스 그리고 인간 삶에 대한 비판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단순히 하급 노동자로 일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거칠 필요가 있나? 싶을 때, 그의 유년기가 담긴 ‘호밀빵 햄 샌드위치(Ham on Rye)’를 읽어보고는 아. 그래도 이만하면 모범적으로 잘 자랐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슷하면서 다른 유년기를 보낸 일본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다자이 오사무가 한번 안아주고 싶은 안쓰러운 미소년의 느낌이라면 부코스키는 별말 없이 그저 어깨를 툭 치며 담배를 한 대 같이 피우고 싶은 소년의 느낌이 강했다.
부코스키가 잡역부로 일하던 나날들이 담긴 ‘팩토텀(Factotum)’은 영화화되기도 했다. 한국 제목으로는 ‘삶의 가장자리’인데, 정말 삶의 가장자리에 있는 듯 영화로나마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는 그의 하루하루는 위태롭다.
술, 섹스, 도박 그리고 술. 도대체가 술 없으면 안 되는 인생인 걸까.
간혹 얼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취기가 도는 기분이 든다.
그의 중독적 삶은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생겨난 습관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그의 작품에서 충분히 느껴진다. 그의 취기와 냉소가.
그가 아마 한국에서 활동했다면 아마 평생 등단하지 못했을 수 있다. ‘너무 현실적’이고, ‘너무 적나라’해서. 등단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거침없는 언행 덕분에 진작에 보수적인 한국 문학계에서는 바로 퇴출당했을지도.
그러고 보면 ‘오늘의 유머’ 공포 게시판에서 인기를 끌었던 김동식 작가의 ‘회색 인간’을 보며 부코스키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김동식 작가 또한 10여 년 또한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머릿속에 담지 못해 넘쳐 주체 없이 흐르는 이야기들을 적어내어 2018년에는 ‘오늘의 작가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쉽게 말해 문학계의 공식적인 인정보다는 대중에게 먼저 인정받은 작가라는 뜻인데, 그런 김동식 작가가 실제 문학계에서 인정받을 ‘뻔’한 사례를 보면 새삼 놀랍기도 하다.
문단에서도 물론 인정받았으나, 결국 우리 대중들에게 먼저 인정받았던 작가.
부코스키도 마찬가지이다. 어지럽고, 간편하고 직설적인 그의 문체를 보다 보면 가슴이 절로 먹먹해져 그가 살아있다면 어디 있든 찾아가 눈앞에서 그를 안고 펑펑 울고 싶을 지경이다. 그렇게 먹먹히 살아가며 문득, 소소한 위로가 되는 말.
Don’t try.
노력하면 손해일까. 가끔은 부코스키처럼 무책임하고, 무모하게 살고 싶어 지는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