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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Oct 16. 2020

[서평] 소설 <프리즘>

주식도 사랑도 손절이 답?

소설의 첫 문장: (이 거리에는 사람이 많다. 참 많다. 너무 많다.) 예진은 커피를 홀짝이며 생각한다. 


카페, 이커리, 오픈 채팅, 반려견, 도시, SNS, 계절, 그리고 사람. 이런 단어들이 담고 있는 트렌디한 정서를 손원평 작가의 신작 <프리즘>에서 발견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55696


커피숍 앞에서 "싱겁기 짝이 없는 대화"로 시작된 예진과 도원의 만남. 호감의 시작이 모호한 상태가 두 사람 관계를 규정한다. 과거 도원과의 짧은 호감을 경험한 이후 도원을 잊고 살았던 재인은 그와 우연을 통해 재회한다. 재인의 베이커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호계는 오픈 채팅방의 오프라인 만남에서 예진을 만난다.


일상 속 '우연'이란 기제를 통해 두 남자와 두 여자의 연애가 상호 교차(crisscross)되는 모습을 소설은 담담하게 그려낸다. 도원을 향했던 예진의 마음, 재인을 향했던 도원의 마음, 도원을 받아준 재인, 예진을 향했던 호계의 호감은 모두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되고 네 사람은 모두 각자의 자아(self)로 회귀한다.


소설은 사랑이 점멸하는 상황, 그러니까 연애에 머무는 남녀의 관계에 서사의 초점을 맞춘다. 주인공들은 사랑을 완성하지 않고 '통과'한다. 일상과 현실이 무너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적당한 경계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는 컨템퍼러리 로맨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손절의 달인이다.


소설 속에서 유통되는 정서는 나른하고 적당히 우울하다. "사랑이 가장 큰 지상 과제인 인물"들은 현대 사회에서 급격하게 멸종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SNS를 통해 이미 헤어진 사람의 현재를 공유하는, 다소 어이없는 사회에서 인연은 지속되지도 끊어지지도 않는다. 은밀한 사생활은 보란 듯이 인스타그램에 전시되어 관음의 욕구를 증폭한다. 스마트폰에 여전히 저장된 - 이는 다분히 의도적일 수 있다 - 결연한 사람의 전화번호는 이별의 의미를 희석한다. 상처를 주려 하지도, 받으려 하지도 않는 감정의 등가적 교환 속에서 적당히 말랑한 정서만을 향유한다. 소설은 그런 현대인의 달지도 짜지도 않은 연애의 속성을 예리하면서도 느슨하게 포착한다.


코로나 시대다.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손을 잡기 전엔 세정제가 필요하다. 순간의 호감이 비말을 통해 상대방을 쓰러뜨릴 수 있다. 비대면 인연이 더 안전하다. 이젠 정말 사랑이 지상 과제가 아닌 시대가 되었다. 집에 머물며 밀키트(Meal Kit, 손질된 식재료와 양념으로 구성된 간편식)와 함께 이 소설을 읽는다면, 나함에 졸음이 몰려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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