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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탁의 세희 May 27. 2024

노말 인간

괄호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

상견례를 마치고 종일 속이 시끄럽다. 


최근 내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목표가 '보통의 사람처럼 행복해지기'나 다름 없다는 걸 느끼고 그럼 나는 얼마나 보통에 못 미치게 살아온 건가, 보통이란 기준 자체가 이 세상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따위를 했는데 그 기준이 뭔지 마침내 깨달은 기분이다.


평범한 사람은 괄호가 필요 없는 삶을 산다.

아주 어릴적부터 어머니가 뭘 하시니? 라는 대답에 대비하기 위해 몇 가지 시나리오를 짜둔다든가

집과 가족이 동떨어진 개념이기에 범용성 넓은 단어를 선택 해야한다든가

평범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로인해 현재의 내가 이상하거나 불행한 인간이 아님을 어필해야한다든가...


그래서 평범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간결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특정 숫자나 단어만 들어도 사람들이 '아, 그렇구나' 하고 쉽게 이해하는 것
내게 붙은 옵션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려고 허둥대지 않고, 괄호 없이 설명할 수 있는 것.

짧게 말해, 평범한 질문에 곤란해지지 않는 것이다.


생부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지 않는 이유를 예비 시부모님에게 구구절절 설명 않고 넘어갔고, 그럴 필요도 없다 느꼈다.

정식적인 새아버지는 아니지만 '아버지나 다름 없이 좋은 분'을 상견례 자리에 모시고 오는 것도 그저 감사하고 송구한 마음만 들었을 뿐,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그 분의 출생연도를 정확히 알지 못해 허둥대고, 비일반적인 에티튜드로 대화에 임하는 가족의 옆구리를 툭툭 치는 상황이 생기면서, 일반 범주을 벗어나는 것들이 하나하나 머릿속을 멤돌며 목에 가시가 박힌 것 처럼 괴로웠다.

'그럴 수도 있지' 하다가도 잊혀질 때쯤 계속해서 그 상황들을 끌어올려 항변하고 있다.

그때 표현은 그렇게 했지만 절대 나쁜 분도 아니고, 나쁜 뜻도 아니에요. 그냥 공적인 자리가 익숙지 않으셔서 그런 거예요. 누구보다 우리의 앞날을 축복하신답니다.


이미 벌어진 일들에 대해

내가 예측할 수 없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고 자책하게 된다.


과거나 배경을 지우거나 나와 분리시키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이런 복잡다단한 것들이 얽혀 현재의 나를 이루어낸 거니까.

양손에 쥐고 태어난 건 그렇지 못했으나, 내가 선택하고 가꿔온 것들은 행운이 따랐으며 나를 평범한 궤도에 올려 잘 살 수있게 해주고 있다.

이따금 '이래도 되나, 영원히 지속되지는 못할 거 같다'는 생각에 불안할 정도로.


왜 이렇게 평범한 행복과 남의 시선에 목을 매는지 자책하고 자기 혐오하던 나날들에 오늘만큼은 대답할 수 있을 거 같아 글이 길어졌다.

이만큼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내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여전히 변명하고 허둥대고 시나리오를 짜둬야 하는 삶에 지쳐서다.

이걸 안 지금, 앞으로 삶의 목표가 '보통 사람처럼만 행복하게 살기'라 해도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이 덜할 것만 같다. 오늘 하루에 대한 감상이다.



-



그런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해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어떤 충동이 와도 지극히 상식적이고 도덕과 논리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이해를 구하거나, 나 자신의 편의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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