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선생님, 친구들하고 재밌을 거야. 엄마는 공부하러 가야 돼서 집에 없어. 놀아 줄 수가 없어.
어린이집 적응은 도돌이표 같았다. 금요일 즈음 괜찮아졌다가 주말이 지나 월요일이 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
꽃피는 춘삼월만을 기다렸다. 첫째가 어린이집 입소하는 달이었기에. 5개월의 가정보육을 하면서 숨 트일 구멍이 필요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상상만으로도 해갈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린이집 등원 3일 차 만에 아이는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아이의 확진을 기점으로 온 가족이 차례대로 코로나에 걸렸다.
코로나 후유증은 생각보다 길었다. 쉽게 피곤해지고 잠이 쏟아지고 무기력했다. 아이도 체력을 회복할 때까지 어린이집을 한 달 넘게 중단했다.
더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 5월이 되어 뒤늦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처음 4일은 잘 적응하는 듯 보였다.아이는 헤어질 때 씩씩하게 헤어졌다. 심지어 내가 '엄마 좀 있다 데리러...'라고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우리 아이는 적응력 하나는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내심 뿌듯했다. 14개월 때 처음 어린이집에 갔을 때도 아이는 적응기간에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 몇 번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 거부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어린이집 선생님, 다른 엄마들은 우리 아이는 원 적응을 나름 잘한 케이스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수월하게 지나가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산이었다!!!
"오늘은 어린이집에서낮잠 자고 올 거야. 자고 일어나면 엄마가 데리러 갈게."
"엄마~~ 안 갈래. 어린이집 가기 싫어."
낮잠까지 자고 오는 것을 시도해보려고 하자 아이는 심하게 떼를 부렸다. 방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옷 입기를 거부했다. 알 것들을 알아버린 28개월 아이를 설득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난도였다.
어린이집에 가면 놀이터도 가고, 클레이 놀이도 하고, 맛있는 것도 준다 설득해도 아이는 꿈쩍하지 않았다.내가 봐도 설득력 없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건 이미 다 집에 있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집에 있다. 그것도 최고의 경쟁자인 동생과 함께.
아이와실랑이 끝에 폭발한 나는 실수를 해버리고 말았다.집에서는 동생이 너를 계속 쫓아다닐 거고, 동생이 네 장난감을 만져도 때리지 않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냐 반협박성의 말들을 늘어놓았다. 아이가 그럴 수 없다는 대답을 했을 때 난 이미 예상했다는 듯 준비된 답변들을 폭격기처럼 내놓았다. 동생과 싸우고 사이좋게 지낼 수 없다면 어린이집에 가서 놀아야 한다고. 감정적인 말들을 아이에게 늘어놓으며 아차 싶었다. 아이가 동생 때문에 자신이 어린이집에 가야 된다고 느낄 거라생각이 들었을땐 이미 늦었다.
아이는 동생 때문에 자신이 어린이집에 가야 되는 거라 생각되었는지 동생에 대해 더 예민하게 굴었다. 조금만 동생이 다가와도 소리 지르고 화가 주체가 안될 땐 동생을 가차 없이 때렸다. 동생의 존재도,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것도 아이에겐 납득되지 않았다.
어린이집 입구에서 아이는 원이 떠나가라 통곡했다. 억지로 선생님께 아이를 인계해주고 나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아이의 반복되는 울음을 보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 이것도 사회생활이지.' 라며 되뇌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원 때 선생님으로부터 아이의 적응기를 들을 때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슴을 졸였다. 아이가 오늘은 잘 놀았을지, 선생님을 힘들게 하진 않았는지를 걱정하며 선생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3주 정도 연속성을 가지고 출석하면 아이도 차츰 적응할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에 안도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잘 설명해주리라 다짐해본다. 엄마는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놀아줄 수가 없다고. 어린이집에서 놀 동안 엄마도 할 일들을 다 끝내 놓고 너를 기다릴 것이고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재미있게 놀자고 말이다.
아이의 시간을 기다려주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그 과정이 비록 평탄치 않더라도. 아침마다 아이와의 실랑이를 앞으로 몇 번 더 겪게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