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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귀희 May 11. 2022

2016년, 육아의 세상에 입문하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행복한것인지도 모를

나는 을이다. 어쩌겠는가.

갑은 내가 원해서 낳은 내 자식인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갑으로 인해 행복한 을이다.

이제와서 행복하다 할수 있지만 그때는 처음이라 모든게 힘들었던 지난 육아를 돌아본다.

1.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어려웠던 신입엄마


결혼 후 2년만에 계획임신이 성공했고,

임신과정도 무탈히 잘 지나갔다. 출산시기가 임박해 올 무렵 유도분만 날짜보다 한 주 앞서 아이가 자연분만으로 탄생했다. 응애응애 하는 그 울음소리와 함께 내 품에 안긴 따뜻한 아이는 '반짝아' 하는 나의 목소리에 울음을 그치고 금세 편안한 얼굴로 새근새근 잠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을)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그저 내게 주어진 출산이라는 과제를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에 마냥 기쁘기만 했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밤낮없이 2시간마다 수유하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시간이 지나가며

나는 육아라는 것에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100일동안 동굴에서 인내한 끝에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엄마사람이 되기 위한 맵고  인턴의 과정을 담은건지도 모르겠다.


2. 긴 터널의 시간 - 신생아시기


나는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결혼을 하고 먼저 아이를 낳았다. 처음이지만 정말 잘 하고 싶었다.

육아 서적도 몇 권씩 봐 가며 아이의 패턴과 행동을 분석하고 그에 맞게 대처를 하려 했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다. 신생아육아는 엄마가 리드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가 리드하는 것이라는 걸.


아기가 생후 70일이 되었을 무렵, 낮밤이 바뀌었다.

새벽 1시부터 6시까지 잠을 안 자는 것이다. 그리고는 낮잠을 길게 잤다. 아기의 패턴에 맞게 나도 낮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면 되었지만 잠에 예민한 나는 그게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다시 낮밤패턴이 잘 잡혀서 밤에 잠을 잘 자게 되었지만 이미 깨져버린 수면리듬탓에 나의 불면증은 점점 심해졌고 수면시간은 하루 2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누워 있어도 아기가 배 위에 있는듯한 무거운 느낌의 환시까지 왔었다. 몸이 아파도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무기력해졌고 급기야 산후우울까지 오게 됐다.

아이를 돌보다보니 나는 먹는것 자는 것 그 기본적인 것들조차 내 뜻대로 할 수가 없었다.


다들 잠든 밤 혼자서 깨어있는 그 외로움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른다. 새벽이 다가오면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조금이라도 잠을 자야 체력을 비축할 수 있는데 잠을 못 자면

몸이 너무 힘들까봐 그게 두려워 더 잠을 쉽게 못 이루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밤은 밤대로 못 자고

낮은 낮대로 못 자니 몸이 온통 아팠고, 내 몸이 아프니 아이가 예쁜것도 잘 못느꼈던 시기였다. 그저 나의 기본 역할(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만 겨우겨우 했었다.


생애 처음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가다


어느 날은 몸이 너무 힘들어 남편의 출근시간을 뒤로 늦춰달라 부탁하고 아이를 맡긴채 신경정신과도 갔었다. 나의 불면증을 치료하려면 약을 먹어야 하는데, 수유중이었던 나는 수유를 끊을 수가 없어 약을 거부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유와 병행해도 되는 한방치료를 하며 어떻게든 수유를 이어나가려 버텼던 기억이 난다. 내 생애 그렇게 대책없이 버티기만 했던 경험은 처음이다. 모유를 빨리 끊는다고 아이가 큰 일나는 것도 아니지만, 초보엄마인 내게는 그게 큰 일이었다.


기나긴 터널을 지나가는 듯한 막막한 순간이 지나가고,

나의 불면증은 조금씩 나아졌다.

수유는 원하던 6개월을 다 채웠을 무렵 아기가 더이상 먹으려 하지 않아 단유를 했고

자연스럽게 밤수도 끊을 수 있게 되었다.


3. 육아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24개월을 채우고 3살이 되던 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이는 적응기간을 잘 보냈고 덕분에 나도 조금씩 일을 하기 시작했다. 언어능력이 빨라 말은 잘 했지만 낮잠을 잘 안 자고, 쉽게 수용하는 성격도 아니고, 고집도 있어서

아마 어린이집선생님 입장에서는 다루기 수월하지 않은 아이였을 것이다. 외동이라 그렇다는 말도 들었고,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라는 권유도 있었다. 무심코 하는 선생님의 말들이 초보엄마인 내게는 하나하나 날카롭게만 느껴졌다.


아이의 과제는 마치 엄마인 내게 주어진 과제와 같았다.


아기 때부터 손가락 빠는 버릇 탓에 구내염을 달고 살았다.

빨간 약도 발라보고 손에 끼우는 기구도 달아주고 내가 억지로 고치고 바꾸려고 할 때는 어떻게 해도 안 되더니 4살이 되던 해 아이는 스스로 손가락 빠는 버릇도 고치고

배변훈련과 밤기저귀 떼는 것까지 한번에 해결했다.


아이들마다 갖고 태어난 시계가 다 다른데, 때가 되면 알아서 하는 부분들까지 엄마가 모두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아이들은 빠른데 왜 우리 아이는 아직도 느린걸까

왜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를까 걱정 되는 마음은 너무나 이해가 되지만 아이가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마음도 필요한 것이다.


나의 육아멘토, 오은영 박사님은 육아를 너무 비장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모습이 전부가 아니기에 미리 앞서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계속 자라고 있는 아이를 속단해버리고 보이는 문제점을 빨리 해결하려 한다면 아이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셈이다.


4. 아이는 나와 다른 인격체를 가진 타인이다


아이가 부모 뜻대로 모두 따라줄거라는 기대는 비우는 것이 좋다. 아이에 대한 기대를 사랑이라 여기며 부모의 틀 안에 아이를 맞춰 끼우는 부모들이 많이 있다.  


아이가 나의 뱃속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나의 분신은 아니다.

나와 성향이 정 반대일 수도 있는 타인이다.

아이가 나랑 다를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인다면 아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와 관련해서 설명을 기가 막히게 잘 해둔 책의 한 구절이 있다.


"어떤 부모는 규칙을 너무 강조하고, 또 어떤 부모는 자신이 정한 규칙조차 잊고 뭐든지 알아서 하라고 한다. 그렇다면 두 부모 중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그 답은 아이마다 다르다. 어떤 아이는 규칙을 알려주지 않는 부모가 너무 불안하고 또 다른 아이는 규칙이 답답하다. 전자인 아이처럼 어린 시절을 겪은 부모는 규칙을 알려주지 않는 부모가 제 역할을 한다고 평가할 것이고 후자인 아이처럼 어린시절을 겪은 부모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할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아이를 그대로 놔두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 출처: 아이의 그릇. 저자 이정화."


5. 비우는 만큼 채워지는 육아의 행복


가끔은 "어쩔수 없지"하는 마음으로 털어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아이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힘을 빼라는 것이다.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 해서 해 주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전문가를 만나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완벽한 아이도 없고 완벽한 부모도 없다.

서로서로를 채워가는 과정이 결국엔 행복인 것이다.


아이는 갑. 부모는 을.


아이의 인생에서 부모가 갑이 되어 모든 것을 선택하고 해결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삶에서 을이 될 것이다.


아이 스스로가 자기 인생의 갑이 되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부모는 기꺼이 을이 되어 아이의 성장에 맞는 도움과 깨달음을 주면 되는 것이다.


진정 멋진 을이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때로는 욱하는 마음을 다스리며 육아를 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버라이어티한 날들이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와의 관계를 계속해서 잘 만들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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