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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헨님 Sep 07. 2019

팀장님과 나의 간격

벤츠 E클래스와 A클래스의 차이 정도?

팀장님은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차를 탔다.

관리도 어려운 베이지톤 시트 옵션에 독일산 럭셔리 세단. 나는 같은 브랜드의 막내라인 엔트리급이다. 당연하지, 나보다 연봉이 두 배는 높을 테니. 그럼 나도 10년 뒤엔 저걸 타고 있으려나.


재작년에 엄마 아빠가 내 두 번째 차를 골라 주면서 그랬다.

“젊은 여자가 너무 좋은 차를 타도 이상해.”
“엄마, 나가보면 나보다 어린 애들도 포르셰 타고 레인지로버 타고 그런다.”
“그런 애들은 뭐하는지 의심스러운 애들이지. 너처럼 정상적인 직장 다니는 애들은 안 그러지.”

정확히 숫자를 내어놓지 않아도 벌이의 정도가 예상되는 뻔한 타이틀을, 나는 꽤 오래 달고 있다.   



팀장이 되면 얼마를 받을까, 직원들은 궁금해한다.

결혼도 안 한 우리 팀장님이 사실 건물주라고, 친한 회사 친구가 아무도 없는 회의실에서 불쑥 알려주었다. 네임밸류에 비하면 연봉이 몹시나 작고 귀엽다고 여겨지는 우리 회사에서, 결혼을 안 하면 건물도 살 수 있는 거야? 깜짝이야.

뒷 이야기에 빤한 다른 과장님이 나중에 진실을 알려 주긴 했다. ‘건물 아니고! 오피스텔 한 개, 그러니까 호실 하나 갖고 있다고!’. 아니, 다들 남의 재산목록을 어떻게들 파악하고 있는 걸까.  


좋은 차를 타면 승차감보다 하차감이 좋다고 들었다. 부럽군.


건물주가 아니라도 적어도 팀장님은 고급 세단을 탄다.

작년에 우리 팀에는 굉장히 살가운 여대생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그녀가 우리 팀장님의 기분을 대체로 유쾌하게 만들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출근 준비에 들이는 정성이 무려 1시간이라는, 완벽히 머리를 세팅하고, 코랄빛 섀도와 립과 쉐딩을 전문가처럼 바르고 출근하는 그녀의 생일날, 나는 처음으로 팀장님의 럭셔리 카 조수석에 앉았다. 식물원처럼 꽃과 나무가 가득한 정원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나와 그녀와 팀장님과 또 다른 여자 직원 넷이서 퓨전 음식을 잔뜩 시켜 먹었다. 꺄르륵 즐거웠고, 맛있었고, 감사한 남의 생일 점심.

돌아가는 길에 팀장님이 ‘아, 회사 들어가기 싫다’ 했다. 나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선배가 있으면 급격히 그가 좀 좋아진다.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느껴져서 어느 정도 좀 내 사람 같다, 기울어 버리는 것이다. 40대이고, 좀 소심한 면이 있는 미혼 남자이고, 여자 직원들에게 약하고, 몇 남자 직원은 독재자라고 뒤에서 욕하고, 비싼 자동차를 타고, 수익보다 신경 쓸 게 더 많을 오피스텔 한 개를 가지고 있는 팀장님을 나는 말없이 지지하고 있다. 그는 나에게 전반적으로 무해하며, 대부분의 공격은 나름의 여성성으로 방어가 가능하다.


간격은 점점 줄어든다.


나도 벌써 곧 관리자급으로 여겨질 연차를 차곡차곡 쌓아놓은지라, 마냥 물어뜯고 싶던 리더들이 좀 안쓰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팀장이 도대체 하는 일이 뭐냐며 부르르 분노하는 어린 직원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도 있고. 놀랍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억지로 안 되던 일들이 그냥 그렇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나이가 들면 나도 내 명의의 오피스텔을 갖고 있으려나, 시트를 베이지색으로 고르는 객기를 부려보기도 하려나. 그리고 젊은 애들과 밥을 먹고 그 시간이 즐거워서 또 아쉬움도 느끼려나 생각해본다.


그리고서 정말, 그렇게 팀장님처럼 오래오래 다니고야 말게 될 건가, 겁이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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