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헨님 Nov 20. 2019

가족을 잃어버리는 밤

꿈에서 엄마가 죽었다.

내 동생이 혼자 슈퍼를 가기 시작했을 만큼만 컸을 무렵에, 꿈에서 동생이 자꾸 죽었다. 동생이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추락을 했고 그 장면을 건물 밖에서 지켜보았던 꿈을 생생히 기억한다. 폭발은 거대했고, 절망한 나는 울다가 잠에서 깼다. 작은 입술을 살짝 벌리고 숱 없는 곱슬머리에 땀이 송송 난 채로 아기인 동생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런 밤이면 별 게 다 애틋해졌다. 일상의 소중함 같은 건, 몽땅 다 헝클어지지 않으면 내내 모를 것이다. 당연한 시스템이, 느긋한 관계가, 손에 닿는 소모품들이 늘 거기에 있기 때문에. 나는 마디가 선명하지 않은 아기 손을 쥐었다가 놓고 다시 잠에 들었다. 아직 모든 것이 온전하다는 사실에 낯설게 안심하면서.       




어젯밤 꿈에는 엄마가 병에 걸렸다.

“오래전에 치아 치료한 거 있잖아, 보통은 실 같은 걸로 경계를 나누어 놓고 하는데 그때는 그런 걸 몰랐대. 그래서 그때 잇몸 속에 들어가선 안될 게 들어갔다는 거야.”

엄마는 해사한 얼굴로 윗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뭐, 의사가 뭐라고 하는데?”

내가 묻자, 주의를 하나도 안 기울이고 흘려들은 말을 전하듯 눈동자를 위로 굴리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게, 의사가
도저히 자기는 말을 못 해주겠다고 하더라.


무언가 너무도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서, 무방비한 사람에게는 시간을 좀 더 줘야 하는 사건. 그런 게 일어나 버렸다는 얘긴데, 꿈이어서 그런지 나는 퍼뜩 깨달았다. 암이라고? 심각한 암?


그리고 곧장 장면이 전환되어 병원이었다. 엄마가 하얀 환자복을 입고, 하얀 침대에 누워, 하얀 커튼이 배경인 채로 기대어 앉아 있는 걸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이 지나갔다.


‘이젠 부모가 필요 없는 나이가 되었다고 잘난 체하면서 살다가, 이런 상황이라고 뒤늦게 온통 정성을 쏟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부모를 잃은 자들이 진작 함께 여행을 갈 걸, 시간을 더 많이 보낼 걸 후회하는 걸 몰랐느냐고, 스스로를 실컷 비웃었다.

참내, 이럴 거 다 알았지? 이런 날이 올 것을.


나는 회사를 포함한 모든 일상을 모두 다 던지고, 내내 엄마 옆에 있을 것을 너무도 간단히 다짐하였다. 그리고 잠에서 슬쩍 깼다. 동생이 (꿈에서) 죽었을 때는 눈물이 묻은 채로 깼고, 엄마를 (꿈에서) 잃을 뻔했을 때는 재빨리 생각을 오가다 결정을 맺은 채  일어났다.


곧 알람이 울릴 시간이었다.

평소처럼 홀로 일어나 출근을 했고, 오랜만에 엄마의 메시지를 받았다.


“저번에 사준 코트 오늘 개시함. 독서모임 가면서 입고 나왔는데 뿌듯. 너무 예쁘다.”


현실의 엄마는 여전히 해맑고, 내 가슴만 가만히 뻐근해졌다. 꿈 이야기 같은 건 다 묻어둔 채로 답장을 보냈다.


“잘했다, 잘했어! 또 사자!”

그저, 이렇게 매일 또 일상이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묵혀 둔 고백들이 잔뜩 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