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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Man Dec 30. 2020

12월, 편지를 씁니다.

종종 편지를 씁니다. 디지털 디바이스가 이렇게 분에 차고도 넘치는 세상에서 이 무슨 고생일까요. 그래도 아직은 쿼터 자판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마음의 길이가 그보다 긴 것 같아 아직은 편지지를 찾고 펜대에 손을 올립니다.


모든 편지에 수신인이 있진 않습니다. 혼자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을 때, 읊조리기 힘들 문장들이 넘쳐날 때, 그저 군대 위병소 근무 중 고개를 젖히고 철원의 밤하늘, 그 떨어질 듯 말듯 자리를 무심히 채우던 별을 보던 그때를 떠올리며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쓸 뿐입니다. 한편으론 제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모종의 자아 분열을 통한 성찰과 반성의 시간이지 않나 싶습니다.


수신인이 있을 땐,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을 떠올리려 합니다. 함께 했던 공간, 나누었던 이야기, 먹었던 음식들 그리고 그 위에 흘러가던 수십, 수백 개의 표정과 몸짓 목소리가 뇌를 치고 울립니다. 그때만큼은 온전히 기억의 울림으로 다시 수신인을 만나며 오롯이 관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좋은 사진 아래, 그때 그 글이 있었을 뿐이다.’라는 문장의 뉘앙스를 어딘가 읽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 복잡한 머리 안에 잠깐 스쳐 갔던 단어들이 자생이라도 하듯 만들어 낸 건 아닐까 싶습니다. 아, 이 문장을 참 좋아합니다. 한 쌍으로 오롯이 완전해 지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수신인에게 어울릴 만한 문장과 단어를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넘쳐 글을 쓰다 말고 다시 그 사람에게 빠지는 순간이 많습니다.

계속된 활자의 꼬리가 늘어날 때 문득 그 꼬리의 머리를 찾으러 가며 낯부끄러운 펜을 쥔 저를 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길어져 버린 꼬리가 그저 발신인의 말 못 한 마음의 길이가 이만큼 늘어났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12월, 참 묘한 달입니다. 평소 다른 달에 숫자만 바뀌었을 뿐인데 말이죠. 이 글을 마무리할 즘 창밖에 눈이 흩날립니다. 올해, 가슴속 기억해 둔 이들에게 편지가 늦어지지 않게 빨리 편지지와 펜을 꺼내야겠습니다.




배경 사진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다 오랜만에 겨울을 담은 필름 사진을 썼습니다. 빠르게 세상을 걷기만 하다 잠시 안국역 근처 발걸음을 멈춰 새웠습니다.

본문의 사진은 몇 해 전 선물 받아 지금도 쓰고 있는 몰스킨 다이어리와 파카 펜, 성수동 더블유디에이치에서 구매한 우든 인센스 홀더, 오보이 31호와 김현성 선생님의 사진이 담긴 엽서입니다. 좋아하는 것들을 한 대 모아 담았습니다.




이 글의 가제는 <가슴 속 채운 당신을 편지지 위에 내려 둡니다> 였습니다. 막상 글을 다 쓰고 보니 거창한 제목에 비해 글이 어울리는지 고민하게 만들어 쓰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떠오르는 이에게 편지를 쓴다면 쓰지 못한 제목이 어울릴 수 있겠다 생각하며 글의 완전한 마침표를 찍어주어 고맙다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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