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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미 Sep 15. 2020

트로트

    

띠링-     


[유림아잘지냇니 하머니문자한통만보내다오

샾1234로2번보내라]     


  나의 할머니 이경자 씨는 노래교실의 퀸이다. 타고난 무대 매너와 노래 솜씨로 매번 노래교실을 뒤집어 놓는다.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아 거동이 힘들 때도 경자 씨는 휠체어를 타고 노래교실에 나갔다. 노래 없이는 살 수가 없단다. 어릴 때는 집안일로, 조금 자라서는 돈 벌려고 주방에서 그릇을 씻던 경자 씨가 지금까지 잘 버틸 수 있던 건 다 노래 덕분이다. 처음 노래교실 무대에서 환호를 받던 그 날 이후, 경자 씨는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던 부엌데기에서 노래교실의 퀸이 되었다. 경자 씨의 꿈은 티비 무대에 서는 거다.

  경자 씨는 가끔 홀로 타지 사는 손녀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곤 한다. 여태까지 받은 문자는 밥은 잘 먹냐, 춥지는 않냐, 비는 안 왔냐 하는 안부 문자였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트로트계의 진선미를 뽑겠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문자 투표를 부탁하는 문자였다. 흥 많고 끼 많은 경자 씨가 이 프로그램에 마음을 빼앗긴 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노인네들이 나가서 노래부를 수 있는 곳이 전국노래자랑 밖에 없다는 사실은 경자 씨의 큰 슬픔이었다. 그런데 트로트 서바이벌이라니. 경자 씨에게 최고의 프로그램이었다.

 경자 씨의 마음을 사로잡은 2번은 대체 누구일까. 검색을 했다. 1번 김00. 28살. 2번 최00. 21살. 3번 박00. 13살... 트로트 서바이벌이랬다. 할머니들이 열광하는 프로그램이라길래 당연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춤추고 노래하리라 생각했는데. 젊은이들의 잔치였다. 심지어 아직 초등학생인 참가자도 있었다.      


“테레비에 늙은이들이 나오면 좋아하겠나. 젊은이들이 나와야 사람들이 보지.”

트로트 프로그램에 왜 젊은 사람 투성이냐던 질문에 경자 씨가 대답했다. 

“할머니도 다음에 여자 프로그램 또 하면 그때 나가. 내가 신청해줄게. 할머니 티비 나오는 거 꿈이잖아.”

“됐다. 다 늙어삐갖고 테레비 나가 뭐하겠노. 사람들이 싫어한다.”     


 이 프로그램 때문에 노래교실도 인기가 많아져 젊은이들이 많이 신청했다고, 경자 씨는 말했다. 젊은이들이 컴퓨터며 핸드폰이며 빨리빨리 잘 신청해서 할머니들은 당할 수가 없단다. 문자도 겨우 보내는 경자 씨가 이번 달 노래교실을 신청 못한 건 당연한 시나리오였다. 혼자 집에서 티비를 바라보며 박수를 치는 경자 씨의 뒷모습이 눈에 선했다. 경자 씨는 트로트 프로그램이 많아져서 볼거리가 많아졌다며 좋다고 말한다. 그 트로트 열풍 덕분에 경자 씨는 눈요기 거리를 잔뜩 얻었지만, 삶의 낙이던 노래교실 무대에서 밀려났다. 


 무대에서 내려온 노래교실 퀸은 오늘도 전국민 문자투표 한 건이 된다.     


 어두운 거실에 티비와 휴대폰 불빛이 반짝였다.     


[2번]     

“전국민 문자투표가 벌써 400만 건! 400만 건에 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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