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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미 Aug 13. 2020

2만원

오늘의 대화 한 토막


신문 구독을 해지했다. 1 구독을 하면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은품으로 준다길래 덜컥 1 구독을 신청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1 구독 값으로  좋은 스피커를   있었을  같긴 한데. 아무튼 스피커는  쓰고 있다. 1년이 지났으니 구독을 해지해야겠다 싶었다. 신청은 홈페이지에서도 간단하게   있게 해놓고, 해지는  고객센터에 전화해야   있도록 해놓은 신문사의  보이는 행태에 잠깐 화를 내다가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고객을 항상~~어쩌구저쩌구~~ 구독 해지 및 변경을 원하시면 3번을 눌러주세요’ 꾹- ‘어쩌구 저쩌구~~ 구독 해지를 원하시면 3번을 눌러주세요.’ 꾹- ‘상담사를 연결해드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고객센터에 전화하는 걸 꺼리지 않는 편이다. 전화로 배달하거나 고객센터에 전화하는 걸 어려워하는 몇몇의 친구들과 달리 나는 전화로 무언갈 주문하고 상담하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안녕하십니까 상담사 ㅇㅇ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구독 해지 좀 부탁드릴게요.”


“어쩌구저쩌구~~ 담당 부서로 연결해드리겠습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여느 때와 같은 전화 상담이었다. 평소와 달리 이런 글을 쓰게 한 건 그 다음이었다.


“아, 진짜 너무하는거 아냐? 안녕하세요 상담사 ㅁㅁ입니다.”


늘 들어왔던 인삿말이 아니라 잔뜩 지치고 힘들어하는 목소리가 먼저 귀에 꽂혔다. 그는 전화 연결이 된 걸 몰랐던 것 같았다.


“아, 네. 저 구독 해지 좀 하려고요.”


“구독 해지하시려고요? 왜요?”


“이제 그만 봐도 될 것 같아서요.”


“그러지 마시고 한 번만 더 연장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6개월 무료로 넣어드릴게요. 상품권도 드릴게요.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아, 제가 이제 더 못 읽을 것 같아서요..”


“학생이세요? 저희가 상품권 드릴게요. 한 번만 구독 연장하시면 다음에 저희가 해지해드릴게요. 한 번만 연장해주세요.”


“아 제가 학생이라 매달 구독료를 내기가 좀 어려워서요.”


“저희 생각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요즘 저희 사정이 안 좋아서요. 배달하시는 분도 한 부에 배달비로 100원 받으시는데, 요즘 비도 많이 와서 더 힘드신데 한 번만 연장해주시면 안 될까요? 곧 저희 평가도 있고, 요즘 너무 힘들어요. 제발 연장해주세요.”


누군가에게 ‘제발’이라는 말을 들어본 것이 언제였던지.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곧 미안해졌다. 내 돈 내고 내가 해지하겠다는 데 왜 미안해하는 건지 조금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그의 목소리가 너무 간절했다. 내가 취준생이 아니었다면, 돈을 벌고 있었다면, 용돈을 죄책감 없이 쓰던 어린 학생이었다면 그의 '제발' 섞인 부탁에 "네 연장해주세요."라고 답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나의 생산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취준생이었고, 당장 이번주에 나갈 통신비, 관리비도 빠듯했다.


“죄송해요. 저도 요즘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요.”


“하아.. 네 알겠습니다. 해지 신청 해드릴게요.”


그는 한숨을 푹 쉬더니 한참 동안 전화를 끊지 않았다. 끊기지 않은 전화 반대편에서는 한숨소리와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그가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으나, 그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내가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는 목적이었다면 아주 성공적이었다. 결국 타닥대는 키보드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린 기분이었다. 마음이 갑갑해서 전화를 끊고 의자에 멍하니 한참 앉아있었다.


신문의 한 달 구독료는 2만원이다. 2만원은 사람을 간절하게 만들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내가 5년 전에 하던 과외 시급이기도 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거리낌없이 ‘제발’이라는 부탁을 하게 하는 그 2만원은 얼마나 작고도 큰 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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