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놂작가 May 01. 2023

나는 똑바로 걷고 있단 말이에요

詩와 낙서

직진하며 걷는 자와 대각선으로 걷는 자가 충돌하면 둘 중 누가 경로를 변경해야 하는가?

대각선으로 걷는 자다.

그러나 대각선으로 걷는 자의 시점에서 보면, 그가 옆으로 게걸음을 걷는 중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 그 역시 직진하고 있다.


둘 증 누가 보편적 직진에 가까운지 판단하는 기준은 도로 위에 그려진 횡단보도다.

길가에 놓인 연석이고 보도블럭들이다.

횡단보도의 직선들이 향하는 방향으로 걷는 자가 우리가 비로소 판단컨대 직진하는 자다.

저마다의 기준과 방향이 다르지만 각자가 나름의 직진을 하고 있음에도 기어이 땅바닥에 임의의 선을 긋는 이유는 모든 차들이 서로와 보행자를 배려하며 자율적인 안전주행을 하리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한 때, 그리고 꽤나 최근까지도 이 세상이 스스로 올바른 가치판단이 가능한 성숙한 인간들의 집합체일 거라 믿었다.

그래서 나는 모로 걸었다.

때로는 앞으로 가끔은 대각선으로 자유롭게 내키는 대로 걸었다.


그러나 그 모든 길에서 나는 항상 누군가와 부딪혔다.

그들은 늘 나에게 비킬 것을 요구했다.

애초에 왜 바닥에 그어진 선 따위가 옳은 방향과 그렇지 못한 방향을 결정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 화가 났고 화가 나서 싸웠다.

그렇게 싸우고 부딪힐수록 더 굵고 진한 선이 내 앞에 그어졌고 사람들은 내가 잘못 걷고 있으니 돌아가라고 입을 모아 외쳤다.


어느덧 주위를 빽빽히 메운 어지러운 흰 선들에 갇혀 나는 길을 잃고 말았다.

시시때때로 어깨를 부딪혀 오는 화가 난 사람들에게 나 역시 계속 맞서 싸우며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전진해 나가야 할까?

혹은 내가 그리지도 않은 선을 따라 그저 남들처럼 무기력하게 걷는 것이 옳을까?

할 수만 있다면 하늘로 솟구쳐 이 땅이 아닌 어딘가로 3차원 이동하고 싶은 마음을 누른 채 오늘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그저 우두커니 서 있다.

작가의 이전글 인사동 봄길을 걷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