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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Oct 03. 2023

놓친 물고기가 아까운 밤

발바닥에 달린 남자 보는 눈에 대하여

올해 4-5월 잠깐 만났던 남자가 있다.

어떤 모임에 나갔다가 처음 본 이후로 쭉 내게 호감을 표현해 온 사람인데 내가 좋아하는 키 크고 대화가 통하는 남자였다.

이상적인 키 185에 몸이 좋고 각종 운동을 수준급으로 하는 데다 심지어 나이도 나보다 어린 연하남이었다.

본인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술자리가 잦은 나를 위해 늘 대기하고 있다가 갑자기 불러도 데리러 와 주는 성의를 보였고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독서와 글쓰기가 취미인 반전 매력도 갖추고 있었다.

내가 추위를 잘 타는 걸 알고 차에 항상 얇은 담요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물론 크로스핏이 취미인 나의 남자 취향을 조심스레 묻고(운동을 시작한 뒤 몸통이 큰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날로 잠시 쉬던 헬스장에 재등록하는 행동력도 보여 주었다.

자신에 비해 마음이 크지 않고 늘 제멋대로인 나에게 화가 나거나 지칠 때도 있었을 법 한데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오히려 시를 써서 건네는 섬세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었다.


이토록 진국인 남자를 거절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당시 조금 더 관심가는 남자가 있었고 두 번째로 이 사람의 얼굴이 내 취향에 전혀 맞지 않았다.

본래 눈이 큰 남자를 좋아하는데 이 사람의 눈이 작은 편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강에 겨워 똥을 싸도 유분수지, 객관적으로 괜찮은 남자의 애정 공세를 받다 보니 스스로가 엄청나게 대단한 여자라도 되는 줄 알았었나 보다.


착각도 이 정도면 병이다.

이혼 경력에 나이도 많고 그렇다고 딱히 예쁘지도 않은 나를 그만큼이나 좋아해 준 사람이라면 뭐가 됐든 일단 만나봤어야 했다.

나는 성급하게도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앞으로도 너를 남자로 볼 일이 없을 거라 못을 박고 서로의 마음이 다르니 이제 만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끝까지 매너 있게 내 의견을 받아 들여 주었고 이후로도 질척이거나 무작정 나를 찾아오지 않고 깔끔하게 관계를 정리해 주었다.


아직도 철이 없고 남자 보는 눈이 없어 좋은 사람과 연애할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조금 속이 상한 밤이다.

당시 내가 관심을 두던 또 다른 남자는 알고 보니 굉장히 소심하고 남자답지 못하며 치사한 인간이었고 관계에 있어 비겁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마음만큼이나 키도 작았는데 고작 이런 사람 때문에 굴러 들어온 복덩이를 뻥 차버리고 여전히 외롭게 살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할 뿐이다.

언제쯤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선구안과 혜안을 가지게 되려나.

도대체 얼마나 더 큰 시련을 몇 번이나 더 겪어야 철이 들려나.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카카오톡 프로필 업데이트 목록을 보다가 나를 좋아했던 그 남자의 커플 사진을 보았기 때문.

원래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실제로 이성적 호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던 사람이 다른 여자, 그것도 엄청 예쁜 여자와 사귀는 것을 알게 되자 갑작스레 매력적으로 보여 새삼 아까워진 것일 테지.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정신연령은 늘 중학생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스스로가 너무 애같아서 웃음이 난다.

한 예순쯤 되면 나도 조금은 현명해져서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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