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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 Jan 09. 2022

열두 번째 이력서

보낸 메일함을 열었다. 한 달 동안 무려 열 두 곳에 이력서를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그중 한 곳에서 연락을 받았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심리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인 줄 알고 지원했는데 '매불쇼'처럼 정치 이슈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반드시 방송 일만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한 가지, 이게 뭐지? 하는 부분이 있었다. 보통의, 일반적인 정치 프로와 달리 그곳은 사주와 명리학을 중심으로 정치 이슈를 다루는 채널이었다.


게다가 애초에 진보 성향의 작가면 더 좋겠다고 조건을 달아 놓기는 했는데, 틀튜브로 대표되는 보수 성향의 방송을 진보 버전으로 보게 될 줄이야!(또 나만 모르고 있었나? 세상이 원래 이렇다는 걸 ㅜㅜ)


벌써  2년 넘게 사주와 명리학적 관점에서 진보 입장을 대표하는 방송을 해 오고 있다는 담당자는 일주일에 다섯 번, 매일 1시간씩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는 식의 라이브 방송을 하다 보니(대본도 없이, 방송 10분 전에 뉴스만 한번 훑어보고 바로 방송에 들어간다고 했다.) 매번 하는 말도 비슷하고 재미도 없고 힘들기만 해서(당연한 거 아님? ;;) 작가를 써보기로 했다고 했다.


작가의 힘을 빌리겠다는 생각은 참으로 바람직하나 그런다고 방송이 절대로 매불쇼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몇 가지를 보완하고 코너 기획을 하면 대선을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조금은 구독자 수를 늘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잠시나마 품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페이가 전혀 희망적이지 않았다.


아무리 유튜브고 라이브 10분 전에 대충 뉴스만 한 번 훑어보고 하는 방송이라지만, 10분도 이니고1시간짜리 라이브 방송의 원고를 매일 써야 하는 일인데.


아무리 Why가 아니고 What을 생각해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대라지만.


아무리 뭐라도 하고 있어야 그게 연결 고리가 되어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거라지만.


아무리 네 나이를 생각하라고 하지만!!

이건 정말 뭐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담당자는 빠른 시일 내에 답을 주겠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아마 다음 주가 되어도 연락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이 좌절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너무 다행스러웠다.(아직 배가 덜 고팠다.)


더 늦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교차한다. 아직은 51대 49로 전자가 더 크지만 곧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후자의 마음이 더 커지겠지.


올해 마흔넷.

나는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왜?'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무엇을?'을 생각해야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다고 하는데(얼마전 같은 마흔 네살이 된 곽정은 님 말에 따르면), 왜 나만? 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으이그. 이놈의 고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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