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입니다.
비가 그치고 나면 말로만 되뇌던 가을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겠죠.
7월에 방송 프로그램 하나를 끝냈습니다.
시작할 때부터 2회만 하고 빠지기로 한 프로그램이라 별 미련은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지금까지는 어떤 프로그램을 하든, 반드시 제 능력을 인정받고 유종의 미를 거뒀는데.
이번엔 그렇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가진 역량을 다 보여주기에 두 달이라는 제작 기간이 짧기도 했지만,
한동안 시사 프로그램과 먼 길을 걸어왔던 터라 구성을 잡고 대본을 쓰는 모든 일이 어려웠습니다.
22년 차 방송작가가 20분 안팎의 VCR 구성과 대본이 어렵다니, 그동안 연차를 다 어디로 쌓은 거야...
제 자신이 한심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직 더 배울 게 있다는 사실에 살짝 흥분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분 좋은 자극도 잠시, 시사 프로그램을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 없이 혼자서 끌고 가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습니다.
담당 피디와 작가가 부족하면 팀장이라도 힘이 돼 주어야 할 텐데.
본사 제작 팀의 작가가 아닌, 외주 제작 팀의 작가로 참여한 터라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본사 팀장은 시사 때나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말 그대로 시사를 하는 자리에서 만난 팀장은 깐깐한 클라이언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핑계라면 핑계일 수 있지만,
2회를 만드는 두 달 동안 너무 외롭고,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3회, 4회까지 함께 했다면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감을 조금 더 익힐 수 있었을까.
그래서 팀장에게 인정받고 덜 찜찜한 기분으로 그만둘 수 있었을까.
언젠가 한 번은 굵직한 시사 프로그램을 해 보고 싶은 욕망이 아직도 지푸라기만큼 남아 있는 터라, 이번 프로그램에서 시사 감을 익혀 다음에 꼭 도전해 보고 싶었는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오는 오늘, 그리고 당분간 제 직업은 전업주부이자 백수, 그리고 또 다시 구직자입니다.
마흔 중반을 달리는 방송작가에게 일이란 언제 올지, 언제 가버릴 리 모르는, 정말 얄궂은 존재임을.... 다시 한번 느끼는 날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