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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 Sep 27. 2023

당분간 전업주부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입니다.

비가 그치고 나면 말로만 되뇌던 가을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겠죠.


7월에 방송 프로그램 하나를 끝냈습니다.


시작할 때부터 2회만 하고 빠지기로 한 프로그램이라 별 미련은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지금까지는 어떤 프로그램을 하든, 반드시 제 능력을 인정받고 유종의 미를 거뒀는데.

이번엔 그렇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가진 역량을 다 보여주기에 두 달이라는 제작 기간이 짧기도 했지만,

한동안 시사 프로그램과 길을 걸어왔던 터라 구성을 잡고 대본을 쓰는 모든 일이 어려웠습니다.

22년 차 방송작가가 20분 안팎의 VCR 구성과 대본이 어렵다니, 그동안 연차를 다 어디로 쌓은 거야... 

제 자신이 한심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직 배울 있다는 사실에 살짝 흥분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분 좋은 자극도 잠시, 시사 프로그램을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 없이 혼자서 끌고 가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습니다.

담당 피디와 작가가 부족하면 팀장이라도 힘이 돼 주어야 할 텐데.

본사 제작 팀의 작가가 아닌, 외주 제작 팀의 작가로 참여한 터라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본사 팀장은 시사 때나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말 그대로 시사를 하는 자에서 만난 팀장은 깐깐한 클라이언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핑계라면 핑계일 수 있지만,

2회를 만드는 두 달 동안 너무 외롭고,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3회, 4회까지 함께 했다면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감을 조금 더 익힐 수 있었을까.

그래서 팀장에게 인정받고 덜 찜찜한 기분으로 그만둘 수 있었을까.


언젠가 한 번은 굵직한 시사 프로그램을 해 보고 싶은 욕망이 아직도 지푸라기만큼 남아 있는 터라, 이번 프로그램에서 시사 감을 익혀 다음에 도전해 보고 싶었는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오는 오늘, 그리고 당분간 제 직업은 전업주부이자 백수, 그리고 또 다시 구직자입니다.


마흔 중반을 달리는 방송작가에게 일이란 언제 올지, 언제 가버릴 리 모르는, 정말 얄궂은 존재임을.... 다시 한번 느끼는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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