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 브랜드 열전 [01]
“우리는 ‘젊은이에게 맞는 테이블’이나 ‘나이 든 커플의 침실에서 사용하는 테이블’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다. 최대한 단순한 디자인으로 다양한 생활환경에서 조정되고, 어떤 수준의 삶이든 어울리는 테이블을 만든다. 이것이 무인양품이 보는 디자인의 우수성이다.” – 하라 켄야
현재 우리는 '미니멀 라이프'라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받아들이고 있다. 산업화 이후 우리는 배곪게 살았던 삶의 반작용으로 무조건 가득히 채우고자 하는 삶에서, 비움의 미학을 이해해가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셈이다. 복잡화된 현대인의 관계, 정보의 과잉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오로시 비움의 여지가 남은 디자인을 본능적으로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 무인양품의 브랜드 디렉터인 하라켄야는 이를 일찍이 이해하고 미니멀 라이프의 한 축을 제시해왔다. 무인양품[無印良品]이라는 브랜드 이름에서도 볼 수있듯 무인(無印): 인장(브랜드)이 없음, 양품(良品): 품질좋은 물건. 즉 브랜드 없는 품질 좋은 물건을 만든다는 것이 무지의 철학이다. 제품 본연의 디자인, 디자인 하지 않는 디자인을 제시한 무지의 성장과정을 들여다 보자.
제품의 본질만 남기고 지워라
수 많은 경쟁 브랜드 사이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브랜드를 구축하기란 쉽지 않다. 1988년 이래로 무지만의 스타일을 구축해가던 무인양품은 2000년 초반 유니클로와 같은 공룡 SPA 브랜드들 사이에서 38억엔 적자라는 사업의 위기를 맞이한다. 이를 계기로 무인양품 마쓰이 회장은 '무인양품의 자기다움'을 강화하기 위해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새롭게 정비하게 되는데, '제품 본연만 남기로 모두 지워라' 즉, 제품 및 패키지 공정, 매장 인테리어, 직원, 모두 제품의 본연을 살리는 구조로 축소·재편되었다. 이를 위해 제품 소재는 다양화 하는 반면, 광고와 포스터 POP, 패키징, SI 등은 더하기 디자인이 아닌 빼기 디자인을 강행해 나갔다. 이러한 무지다움의 브랜드 철학과 시스템이 결국 수 많은 SPA브랜드 사이에서 차별된 포지셔닝을 획득할 수 있었다. 현재 무지는 약 7,000여 개의 품목을 판매하며, 세계 23개국에 200여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리빙 브랜드로 자리잡게 되었다.
제 2의 무지는 자주(JAJU)다움이 아니다
무인양품의 성공은 이후 많은 리빙 브랜드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특히 신세계 사단이 이끄는 '자연주의' 이하 '자주'는 무지의 브랜드 시스템을 상당수 차용하였다. 초기에는 로고의 형태, 브랜드 컬러 심지어 매장의 구조까지 이곳이 무지의 매장인지 자주의 매장인지 혼동 될 정도로 모든 면이 흡사했다. 이미 성공한 브랜드의 미투 전략(모방)은 초창기 브랜드가 빠르게 시장에 정착 할 수있도록 도와주지만, 정착 이후의 성장을 보장 하지는 않는다. 현재 자주는 무지의 아류로 남지 않기 위해 자주(JAJU)다움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주의 정체성이 과연 비움의 철학인지, 정말 디자인을 하지 않는 디자인인지 등의 자기 성찰과 자기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형 미니멀 라이프를 찾아서
미니멀 라이프가 현재 세계를 관통하는 라이프 트렌드라면, 자주와 같은 한국형 리빙 브랜드들은 미니멀 라이프의 로컬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형 미니멀 라이프는 무엇일까? 트렌드 코리아 2018에 따르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 일에 치중되지 않는 자신만의 삶 추구 등이 있다. 즉, 적은 비용으로 높은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삶이 현재 한국형 미니멀 라이프를 관통하는 하나의 트렌드라고 볼 수있다. 모양만 미니멀이고, 가격은 결코 미니멀하지 않은 현재의 리빙 브랜드를 경계하고, 진정한 가성비가 적극 반영된 한국형 리빙 브랜드들의 성장을 내심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