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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준원 Mar 11. 2024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고유함'이 지니는 가치.

<시대 예보: 핵개인의 시대>

비교적 늦은 시기에 개화를 맞이한 한국은 상업을 천하게 여기며, 농업을 우선시하는 나라였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한 가지는 집단의 공동체 의식이었다. 이러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세대는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우선시한다. 그러나 시대가 급속도로 변하면서 집단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소중함도 보듬어 달라는 세대가 등장했다.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세대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변화를 겪은 세대, 그리고 스마트폰을 태어나면서부터 다루는 세대가 공존하면서 여러 갈등이 야기되었다. 즉, 우리 사회는 생존을 위한 집단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던 시절에서 개인의 소중함 역시 중요하다고 보듬는 사회로 이행된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 여타 선진국에서는 치열한 논쟁의 과정을 몇 백 년에 걸쳐 차츰 다듬어진 철학과 문화가 한국에서는 급속도로 빠르게 퍼졌다.


혼란이 가중된 사회 구성원은 각자가 서로의 어려움을 감싸 안기에는 아직 버겁다고 느낀다. 그래서 대화는 더욱 어렵고 상호 이해의 길은 멀고도 험해 보인다. 금방 끝날 것 같았던 갈등은 인간의 수명의 연장으로 더욱 어렵게 되었다.


© garybpt, 출처 Unsplash


지금까지 굳게 믿었던 토대가 흔들리는 경험은 수많은 사람들의 세계관에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라를 운영하던 당신들은 무엇을 했나'라고 묻는 반응이 나타난다. 그리고 '국가'가 그토록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허술하다면, 이제 내 살길은 내가 찾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결심이 고개를 든다.

<시대 예보> 中


비단, 국가뿐만이 아니다.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와 가정에서 운영이 허술하다면 자신의 살길을 찾아 떠나고 만다. <시대 예보>에서는 '오리너구리'를 예시로 들어 개개인성을 강조한다. 어느 종에도 포함되지 않고 오리너구리 종이라는 자신만의 혈통을 가진 동물이 바로 핵개인이라 할 수 있다.


개개인의 특성이 다양화되고 모두가 오롯한 자신으로 정체성을 표현하는 지금의 시대에 '오리너구리'는 적당한 비유라 생각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말한 진정한 자유로 가는 길도 개개인성의 확대에 있다.


아무리 개개인성의 발현이 우선시 된다고 하더라도, 조직 내에서 진행하는 공통의 업무는 다르게 바라봐야 한다. 칭찬은 개인에게 해야 하고 책임은 함께 짊어지는 구조로 가야 한다. 칭찬은 집단으로 받고 책임은 개인이 지는 구조에서는 먼저 나서는 사람이 바보가 된다. 과거에는 먼저 나서지 말고 중간만 가라는 평범성을 강조했지만, 핵개인의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는 태도로 서슴없이 할 말은 한다.


© claybanks, 출처 Unsplash


형평성이 먼저, 포용성이 그다음, 마지막이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형평성과 포용성을 바탕으로 맺은 열매다.

<시대 예보> 中


앞으로의 핵개인들은 '권위적이다'라는 말 자체를 더욱 혐오의 감정으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사회의 새로운 규칙에 대해서 냉철히 고민해 봐야 한다. 과거도 알아야 하고, 현재의 사회도 알아야 하고, 내가 살고 있는 터전에 대한 이해도 함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래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어떤 형태의 문화를 남기고 어떤 형태의 문화를 새롭게 수용할 것인가 바라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속성은 적응적 기제이다.



파일럿은 퇴근하지 않는다

© siderius_creativ, 출처 Unsplash


AI와 합을 맞춘 핵개인은 '자리'가 아닌 '일'을 본다. 나의 성장과 공동체의 공감, 다시 말해 사회적 기여가 동반되는 일자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일자리에는 특별함을 갖춘 핵개인이 자리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수많은 참가자들이 아무리 노래를 잘한다 해도 그만의 특별함이 없으면 스타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고유함'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


그렇다면 '고유함'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 똑같은 곳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환경에서는 절대로 고유함은 생기지 않는다. 나는 프로그래머로 오랜 시간 동안 커리어를 쌓았다. 거기에 더해 다른 무언가가 첨가되어야 나만의 색이 나타날 것이다. 심리상담사, 블로거, 유튜버, 직무 상담 등등.. 또 다른 정체성이 융합되어야 비로소 '고유함'이 생긴다.


단순한 근면함과 순응성은 이제 진화 과정에서 덜 중요해진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노력도 불필요하다. 답이 있는 문제는 AI가 풀게 될 것이고, 인간은 답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문제를 고민하는 역할로 분업이 이루어질 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무를 맡지 않는 직무가 빠르게 사라진다. 행정 업무만 처리하는 기술자의 삶은 온전히 자리를 지키기 어렵다. 전문성 없이 권위 시스템의 일부 역할을 수행하는 '리더'라면 이미 오래전부터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리더'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상 유지이지 변화와 적응이 아니다. 그 '리더'는 시스템의 개선을 막으려고 유능한 사람을 경계하고 누락시킬 확률이 매우 높다.


일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는 숙련에 머무르지 않는다. 앞으로의 과업은 지금의 일을 지켜내는 데에 있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발판으로 파괴적 혁신을 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빠르게 인정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시대 예보> 中


우리는 통상 이미 존재하는 직업 가운데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한다. 하지만 직업의 생성과 소멸의 속도가 가파른 현대에는 자신의 직업을 선택하는 것보다, 현재의 경험과 이력을 쌓으면서 미래의 선택을 준비하는 방향이 옳다.



채용이 아니라 영입

© cytonn_photography, 출처 Unsplash


낭비 없는 촘촘한 조직일수록 구성원들이 일을 시작할 때와 진행할 때 '필터링'과 '피드백'을 매우 정교하게 한다. 필터링은 모든 업무를 현상 그대로 수용하여 관성으로 수행하지 않고, 체로 거르듯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는 과정이다. 피드백은 변화가 발생하게 된 동인들을 함께 돌아본 후에 새로운 방안을 수립해 보는 것이다.


그럴 때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질문해서 핵심을 추출해 내는 리더가 필요하다. '이 현상에서 중요한 건 무엇입니까?', '그 현상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래서 당장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와 같이 핵심을 추출하고 시선을 재조정해 주는 고도의 '필터링 지능'이 필요하다. 그 역할이 바로 지금 시점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리더의 역할이다.


지금 시대는 작업 프로세스에 참여하지 않고 작업 분배와 공정 점검, 결과의 취합만 맡는 전업 관리 모델은 구성원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작업 공정이 시스템에 의해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보일수록 '무임승차자'와 '군림하는 사람'은 더욱 설자리를 잃게 된다. 그러니 리더에게는 더 깊은 통찰력과 더 높은 전문가적 자세가 요구된다.

<시대 예보> 中


지속적으로 학습하지 않는 리더는 점차 설자리를 잃게 된다. 경력이 얼마인지가 중요하지 않고 그 경력으로 앞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며, 그 과정에서 옛 경험이 지혜로 나타나야 리더의 신뢰는 더욱 굳건해진다.


조직에서는 여러 유관부서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사람, 복잡하고 어려운 말을 쉽고 간결하게 해주는 '통역자'가 필요하다. 부드럽게 연결하려면 여러 유관부서에서 필요로 하는 기반 지식과 배경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관심이 없다면 배경도 알 수 없을뿐더러, 잘못된 '통역자' 역할로 오히려 부서 간의 오해가 쌓일 것이다.


리더가 아닌 일반 직장인인 경우 '통역자'가 아닌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 직장인에게 소속감과 명분은 사실 돈보다 더 근본적인 동기부여다. 자신의 일이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는 대의명분이 빈약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성장한다는 서사가 희미할 때, 숫자의 무한 비교에 매달리게 된다. 물론 경제적 보상이 전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보상보다 더욱 중요시되어야 할 요소가 소속감과 성장이라는 '일의 의미'라는 말이다.



핵개인의 출현

<시대 예보> 中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파는 것이 인간이다>라는 책에서 모든 인간은 '자기 세일즈를 해야 된다'라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팔아야 할까?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은 '서사'이다. 성장과 좌절이 진실하게 누적된 자신의 기록은 유일무이한 나만의 서사이다. 나무의 나이테가 그러하듯 서사는 결코 급조될 수 없다.

<시대 예보> 中


지난 세월을 회상해 보면 여러 사건이 떠오른다. 분명 어려움이 있었고, 그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과거의 모든 산물은 고유함을 지닌다. 가족 관계에서부터 시작된 어려움은 사회로 이어졌고, '강박증'이라는 진단으로 정신과 약을 3년 9개월 복용했다. 이러한 유일무이한 서사가 더 귀중한 가치로 인정받는 시대가 열렸다.


여전히 한국은 학교 졸업장과 기업의 사원증 같은 인증 시스템에 등급이 매겨진다. 그러나 점차 성취 인증 시스템에서 구시대적 유물로 통할 날이 머지않았다. 검증된 깃허브의 스코어나 블로그의 구독자, 인스타그램의 달리기 기록처럼 '측정된 권위'를 쌓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졸업장은 정답이 존재하는 시험을 잘 보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산물이다. 물론 대학에서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지식을 축적하겠지만, 졸업장이라는 타이틀로 능력을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오히려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했는지 기록으로 남긴다면 그 자체가 포트폴리오가 되는 시대다.


여전히 꾸준함이 전문성의 중요한 연료인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숙고 없는 근면함'을 지속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매몰 비용의 함정에 빠지기 시작하면 현실적으로 가치를 다한 관계인데도 손을 놓지 못할 때가 많다. 어떤 일을 하든 '그만두어야 할 때'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인생은 짧고 자신의 삶을 형벌처럼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언제든 잘못이 있다면 바로잡으며 꾸준히 자신의 삶을 수정해 나가려는 용기는 이 시대에 큰 '미덕'이 된다.

<시대 예보> 中


사실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는 태도부터 갖춰야 한다. 자기 객관화가 덜 되어 있다면 성장이라는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비전 없다고 여기는 직장에 계속 머물거나 서로를 갉아먹는 인간관계에 집착하기보다는 스스로 정한 반환점까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보고 그에 도달하면 그만두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른 곳으로 움직이려면 밖의 기회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본인의 고유 역량이 필요하다.






참고 도서 : <시대 예보: 핵개인의 시대>

저자 : 송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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