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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로운달빛 Sep 09. 2023

질문 14번. 새벽 3시 37분, 불 켜진 서재에서.

<글쓰기 좋은 질문 642 중 14번>

글쓰기 질문 14/642: 당신이 마치 책 속의 인물인 것처럼 자신의 외모와 성격을 3인칭 시점으로 묘사하라.




요즘은 흔치 않은 오래된 괘종시계가 3시 37분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오후'가 아닌 '오전' 3시 37분이라는 것이다. 잠을 자다가 화장실 신호에 잠시 잠에서 깬 지훈은 서재에 불이 켜진 것을 발견하고 어기적어기적 서재로 걸어간다.


그 곳에는 눈 밑이 시꺼멓게 변한 은영이 컴퓨터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듯 거북목을 하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그녀가 걸치고 있는 것은 지훈의 목 늘어난 티셔츠이다. 등 뒤에 새겨진 'Hankook univ.'라는 글자가 거의 사라질 정도로 오래된, 지훈이 학부 시절에 입던 것이다. 아무래도 빨래를 제 때 못해서 입을 만한 잠옷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은영은 지훈의 목 늘어난 티셔츠가 그녀의 자그마한 어깨 아래로 자꾸 흘러 내리는 것이 신경쓰이는지, 이따금 티셔츠의 목덜미를 잡고 끌어 올린다.


쉴 새 없이 키보드를 와다다다 두드리던 은영은 뭐가 잘 풀리지 않는지 갑자기 쓰고 있던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거칠게 벗어 버리고 눈을 힘껏 비벼댄다. 얼마나 세게 비비는지, 가뜩이나 깊이 패인 눈이 안와골 속으로 빨려 들어갈 지경이다. 곧이어 은영은 왼손 엄지 손가락 끄트머리를 잘근잘근 씹어댄다.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 다시 생채기를 입은 불쌍한 손가락이 벌겋게 부어 오르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녀의 짤막한 다리는 바닥에 채 닿지 못한 채 허공에서 초조하게 앞뒤로 흔들거렸다.


책상 위에는 진작에 얼음이 녹아 없어진 먹다 만 아메리카노 한 잔이 놓여 있었다. 은영은 지훈이 온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코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다가 미적지근하게 변해버린 커피에 눈살을 찌뿌렸다. 은영은 이내 책상 위에서 갈 곳을 잃은 여러 권의 책들을 한 쪽으로 대충 밀어 버리고 커피잔을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내려 놓는다. 지훈은 아무래도 은영이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컵을 쳐서 커피가 쏟아질 것 같아 불안불안하다. 은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오늘밤 지훈과 함께 잠들기는 틀린 것 같다. 잠이 덜 깬 지훈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허리를 벅벅 긁으며 한 동안 은영을 바라 보다가, 부스스한 은영의 단발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불안해 보이는 커피잔만 들고 말 없이 서재 밖으로 나온다.




<굴쓰기 좋은 질문 642> 책 중에서 마음이 가는 주제를 골라 글을 씁니다. 글의 형식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엉뚱한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저의 성향상 아무래도 소설 형식의 글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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