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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울 Mar 30. 2024

사랑에 빠진 딸기

아침편지 12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서 보니 저 멀리 고양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어제는 친구들을 만나러 안양에 다녀왔습니다. 얼마전 아이를 낳은 친구가 아직 50일 쯤 된 아기를 두고 멀리 나가기 부담스럽다며 우리를 집 근처로 초대했어요. 평소와 같이 영어 필사, 스트레칭, 글쓰기까지 아침 루틴을 모두 마치고 집 청소도 간단히 해놓고 집을 나섰습니다. 일찍 일어나니 외출 전에 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출근시간은 이미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가는 길이 한참 막히더라고요. 여유있게 출발하지 않았다면 약속 시간에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친구네 집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 차에 모두 타고 함께 식당으로 이동합니다. 모두들 아이 엄마라 차에 카시트가 있으니 다같이 탈 수 있는 건 내 차 뿐입니다. 나까지 총 다섯명이 복작복작, 식당 가는 길은 고작 10분 걸리는데 그사이에도 할 말이 많습니다.


  이 부근에서 인기가 많다는 닭갈비 가게에 갔는데, 와 여기 정말 맛집이더라고요! 11시 30분 영업 시작 시간에 맞춰서 갔는데도 이미 자리가 만석이었습니다. 아직 친구들이 오지 않았다며 먼저 먹으라고 자리를 양보해주신 분 덕분에 겨우 자리를 잡았어요. 엄청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애매한 맛이 많은 요즘 세상에 확실한 닭갈비 맛이라 좋았습니다. 닭갈비 4인분, 우동과 치즈 추가, 그리고 밥까지 두 개 볶아서 순식간에 모두 먹었어요.


  커피는 다시 친구네 집으로 이동해서 아파트 라운지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새 아파트는 정말 좋더라고요. 라운지까지 직행하는 전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습니다. 28층까지 순식간에 올라가 커뮤니티 라운지 겸 카페에 도착했습니다. 키오스크로 음료를 주문하고, 결제는 아파트 관리 앱으로 합니다. 카드나 현금은 안된다고 해요. 아마 결제금액이 아파트 관리비에 포함되어 나오는 방식인가봅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지나서 우리는 29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라운지는 일반적인 카페나 작은 호텔 로비 느낌이 나는 깔끔한 공간이었어요. 우리처럼 친구들과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거나, 노트북을 들고 와서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집 밖을 나서려면 번거로울 때가 많고, 집에 초대하자니 신경쓰일 게 많은데 이런 공간이 있으니 좋더라고요. 이래서 신축 아파트가 인기가 많은거구나 싶습니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갑니다. 친구들은 모두 신데렐라처럼 가야할 시간이 정해져있어요. 엄마에게 두 아이를 맡기고 왔다는 친구는 엄마에게 미안해서 이젠 가야겠다며 먼저 자리를 일어납니다. 또 다른 두 친구는 3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아기들의 하원시간이 되기 전에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초대한 친구도 50일 된 아기와 돌보미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넘치는 건 나밖에 없지요. 헤어져야 할 시간이니 서둘러 인사를 나눕니다. 나는 얼마전에 아기를 낳은 친구에게 백화점 상품권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친구들 모두에게 우리 엄마가 만들어준 강정을 조금씩 나눠줬어요.


  다시 40분 정도 운전을 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자연스럽게 오늘 나눈 대화를 다시 곱씹어보게 됩니다. 괜히 그런 말을 했네 싶은 말도 있습니다. 할까 말까 싶은 말은 역시 하지 않는 게 정답인데 아직도 그게 잘 안됩니다.친구가 했던 이야기도 생각이 납니다. 50일된 아기가 너무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기질이라 육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친구는, 나보고 남편을 설득해서 꼭 아이를 낳으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평생을 어떤 아기를 보고도 귀엽다 예쁘다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이고 육아는 정말 너무 힘들지만, 아기 배냇 웃음 한 번에 그 모든 피로가 녹는다고 합니다. 이미 조금 더 큰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은 서둘러 그 친구를 만류했습니다. 엄마에게 듣는 잔소리로도 충분한데 그런 말 하지 말라고요.


  하지만 나는 정말 괜찮았어요. 그 친구의 말은 다 진심이었을겁니다. 친구는 지금 아이를 키우는동안 가장 힘들지만 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허니문 기간이지요. 나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있어요. 사랑에 빠지면 그 상대에 관한 이야기를 주위에 늘어놓게 됩니다. 그런 상태를 나는 ‘언급증’ 혹은 ‘사빠딸(사랑에빠진딸기)‘이라고 부릅니다. 그 대상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거든요. 다만 오래 전에는 그게 남자친구였고, 지금은 아이가 된겁니다. 나는 사랑에 빠진 친구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사랑에 빠진 친구의 그 달뜬 표정과 목소리도 좋아합니다. 사랑은 오래 지속되지만 허니문 기간은 길지 않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순간이 얼마나 짧고 소중한 장면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남의 사랑은 정말 재미있어요. 이야기 길어졌네요. 그럼, 오늘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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