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ummybear Aug 05. 2018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 사랑 그 참을 수 없는 권태로움에 대하여

*이 글은 영화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 그 참을 수 없는 권태로움에 대하여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권태로움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오래된 연인과의 관계에 대한 권태,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권태 등.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 새로운 것들을 할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긴장된다. 비단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뿐만이 아니다. 처음 학교에 입학해 첫 수업을 들었을 때, 새로운 회사를 다니게 되었을 때, 새로운 집에 살게 되었을 때, 새로운 옷을 샀을 때 우리는 이 새로움에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 새로움이 주는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은 ‘오래된 것’이 되고 우리에게 익숙해짐에 따라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익숙함은 긴장감과 즐거움을 없애버리고 우리에게 권태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 영화는 권태로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한 대사를 통해 이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새로운 것도 헌 것이 되고 헌것도 예전에는 새로운 것이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마고(미셸 윌리엄스)는 결혼 5년 차이며 다정하고 장난기 많은 남편 ‘루’(세스 로건)와 함께 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둘 사이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친구들을 불러 부부가 함께 파티를 즐기기도 하며, 서로만의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묘한 불만족스러움이 느껴진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알겠지만 이 불만족스러움은 마고에게서 기인한 것인지 루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누구의 탓도 아닐 것이다. 누구의 잘못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아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되는 사랑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헤어지게 되는 것이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독특함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이 부부 사이의 관계의 단절은 영화에서 몇몇 장면들을 통해 묘사된다. 창문 틈을 사이로 키스하는 ‘마고’와 ‘루’의 모습,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마고의 일방적인 백허그가 그렇다. 또한 남편 루가 매일 아침 아내가 샤워할 때 장난으로 뿌리는 차가운 물은 마고에게는 샤워기를 고쳐야 하는 성가신 문제이다. 남편의 장난은 아내의 지루함에 던지는 일종의 자극이었지만 마고에게 그의 장난은 사랑을 방해하는 것, 성가신 문제였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로에게 속삭이는 ‘사랑해’라는 말은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이러한 마고의 일상 속에 새로운 남자 ‘다니엘’이 등장한다. 그의 새로움은 마고의 안정된 일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둘이 칵테일 바에서 나누는 대화는 묘한 성적인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다. 함께 탄 놀이기구에서 느끼는 짜릿함은 이 둘 간의 관계와 비슷하다. 새롭고 짜릿한 사랑, 그것은 마고와 다니엘과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놀이기구가 끝나고 공허한 표정을 짓는 마고에게서 알 수 있듯이 다니엘과의 짜릿한 사랑도 언젠가는 끝나게 될 것을 암시한다.      



  결국 마고는 남편 루와 헤어지고 다니엘에게로 간다. 그렇다면 마고는 다니엘과 사랑함으로써 행복하게 끝날까? 절대 아니다. 다니엘과의 관계도 이전 남편 루와 그랬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고 긴장감은 줄어든다.      


  그렇다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 남편 ‘루’와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일까? 우리는 익숙함도 사랑의 다양한 형태 중 하나이니 거기에서 발생하는 권태로움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영화의 제목 ‘Take this Waltz’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Take this Waltz'이다. 왈츠는 두 사람이 호흡을 잘 맞춰야 출 수 있는 춤이다. 어쩌면 사랑도 왈츠와 같은 것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 간 잘 맞추어지는 것, 이것은 시간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마고와 루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둘은 관계의 어그러짐에 대한 신호를 무시한 채 일방적인 사랑만 서로에게 보낸다.      



  이 영화는 또한 사랑이 언제나 새로울 수는 없으며 ‘익숙한’ 사랑 역시 사랑의 한 형태임을 인정해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사랑뿐만이 아니고 삶의 익숙함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익숙함에서 오는 권태로움을 당연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주는 또 다른 형태들을 즐기려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새로운 것을 해보는 것,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는 것, 관계에 문제의 신호가 발생했을 때 서로 대화를 많이 해보는 것이 그 힘이 될 수 있다. 마고가 사랑은 언젠간 또 변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남편 루와 대화를 통해 권태로움을 해결할 방법을 시도해보았다면. (물론 해결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인생의 빈틈을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을 통해 채우려고 했다면. 이 둘의 관계는 영화의 결말과는 다른 형태로 진행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리고 이것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아닐까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