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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Apr 10. 2022

4월의 바르셀로나

결혼기념 선사곡



이따금 어떤 말에 끌린다. 도통 이유를 모르겠지만 자꾸 눈길이 간다. 그 말을 마주할 때면 눈과 귀로 주목한다. 그리고 되뇌어 본다. 그 말은 우리 말일수도, 익숙한 외국어일수도 있지만 처음 보는 낯선 언어의 일부기도 하다.



스무 살 때 우연히 ‘Te quiero’라는 글귀를 마주쳤다. 어떤 작가의 사진마다 새겨진 이 글자는 내게 묘한 끌림을 발산했다. 이는 곧 나의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파파고는 물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검색창에 한 자 한 자 입력해 글자의 뜻을 알아냈다.




스페인어.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날 나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새로운 글자로 알아냈다. 어쩜 이런 의미였을까. 끌림의 비밀을 얇게 캐냈을 뿐인데, 말 자체가 아주 멋진 느낌으로 다가왔다.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와 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한 영화에서 ‘떼 끼에로! 떼 끼에로!’ 라며 소리쳤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룸메 덕분에 그 말의 소리도 알게 되었다. 영화의 제목은 모르겠지만, 나에게 ‘Te quiero’가 정착한 순간이었다. 비로소.



몇 해가 흘렀다.

내 남자친구는 내게 종종 스페인어를 알려줬다.




금요일 아침 출근길에, ¡Por fin. Viernes!

잘 자라며, Buenas Noches♡

기분 좋을 때 ¡Bueno! ¡Muy Bien!




이런 말들은 스무 살 'Te quiero'에 빠졌던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이 사람은 여태껏 내가 알던 한국인 중 스페인어를 가장 많이 알았다. 그가 알려주는 스페인 말로 언어의 매력을 다시 느꼈다.



그 시절, 문득 스페인어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퇴근 후 종로로 향했다. 스페인어 학원에 다니면서 바르셀로나 출신 선생님, 남미 출장이 잦은 직장인,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는 친구들도 만났다. 이들 덕분에 짧은 기간 동안 내가 아는 단어와 동사 변형은 드문드문 늘어났다. 그날 배운 말을 남자친구에게 알려줬다. 그가 알고 있는 단어든 아닌 단어든 하나씩 주고받는 스페인 말이 그저 재미있었다.



얼마 후 남자친구와 나는 결혼을 앞뒀다. 날짜, 식장이 잡히자 신혼여행지를 고르는 게 가장 중요했다. 몇 가지 후보가 경합했다.



칸쿤, 몰디브는 지금 아니면 못 갈 것 같았다. 유럽은 매력적인 국가가 많아서 고르기가 어려웠다. 코로나가 없던 시절, 우리는 신혼여행지를 어디로 결정할 것인가, 라는 행복한 고민을 몇 달간 이어갔다.



그리고 어느 날. 내 마음속에 스페인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나 스무 살 적 끌림을 선사하던 말. 내 남자친구 어릴 적 생존을 위해 습득했던 말. 우리 둘 전혀 달랐지만, 탁구처럼 주고받던 말로 가까워지던. 우리 둘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우리 같이 꼭 가야만 하는 곳이라면 여기가 아닐까.



확신이 서자 스페인은 필연으로 다가왔다. 그중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로 확정했다. 우리에게 축복의 여행은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을 통해 이루어진 모양이다.



여섯   4. 우리는 식을 친 후  비행기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이스탄불을 거쳐   시간 만에 도착한 곳, 대낮에 도착한 바르셀로나 공항에는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졌다.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움직였다. Diagonal 역에 내렸다. 캐리어를 끌고 캄캄한 지하 역사를 빠져나왔다. 오래된 계단을 거쳐 지상으로 올라온 순간.  눈앞에는 바르셀로나의 4 햇살, 바람이 연두색 나뭇잎과 마구 부대꼈다.  옆에서는 숙소를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요즘 집 밖에만 나가도 천지가 푸릇하다. 이 아름다운 4월의 절경은 지난 시절 지쳤던 심신을 어루만진다. 2026년 파밀리아 대성당이 완공되면 우리 다시 오자던 약속이 떠올랐다. 가만히 따져보니 그날이 머지않았다.



우리 그때는 어떻게 여행할까, 바르셀로나만 가기에 아쉽지 않을까, 아이들과 뭘 먹을까, 힘들어도 그저 좋을 거야.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라디오에서는 Il Divo가 부르는 ‘Eres Tu’가 흘러나왔다. 삶이 영화라면,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https://youtu.be/xvGsWLtbxjg



여섯 해 전, 우리 결혼하던 날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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