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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Jul 19. 2023

두 살 아이가 전하는 말 꾸러미

네 마음의 그릇에 꼭 담고 싶은 것





며칠 전, 예사로운 통화를 마쳤다. 종료 버튼을 누르는데 최근 두 살이 된 둘째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윽고,


“함미야?” (할머니야?)


둘째가 나에게 질문을 하다니!!!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최근 아이의 말이 부쩍 늘었음을 알게 되었다.



언제인가부터 할 줄 아는 말이 하나, 둘 많아지더니 두 돌이 지나니까 아이가 간단한 문장을 시도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또죠” (더 줘.)

“더 주세요,”라고 내가 말을 하면,

“더 !@#$#@$%ㅃ” 라며, 애쓴다.


심지어 질문도 한다.


“아빠, 왜~?” (이 말을 비교적 정확하게 한다)

“엄마야?” (옆집 친구 엄마를 보며, 누구 엄마냐고 묻는다)



두 단어를 붙여서 복합 단어를 만들기도 하고


“엄마 빠찌.” (엄마 반지)

“마이 이녀” (마이멜로디 인형)



퇴근한 아빠에게 문장으로 말한다.


“아빠 안농?”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기분 좋아 보이는 언니에게 청유한다.


“아안니~ 놀다~ 놀다~~ 놀따~~~~~!! 으아아앙앙” (언니, 나랑 놀자. 놀자 놀자 놀자! 왜 안 놀아줘?!!!!)



언니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며 엄마에게 명령한다.


“엄마, 꼬!" (꽃 봐)

“따띤" (사진 찍어줘)




이 외에도 하비지, 함미, 오빠, 아기, 까까(과자), 밥, 맘마(전자기기 충전), 측(책), 언니, 언니 이름, 으유(우유), 긋나잇~  스악(수박) 자우(자두), 딸기, 사가(사과), 마꼬(망고), 바압, 빱(밥) 빠삐(연필), 가이(가위), 삐삐(뽀로로 친구 루피), 뽀뽀(뽀로로), 뻐스(버스), 짹째기(새), 멈머(강아지), 냐옹(고양이), 오오옷(옷), 빠디(바지), 빠!(빵), 또! 등등




일상에서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을 꽤 많이 한다. 그리고 아직 말을 할 수 없어도 제법 정확히 알아듣고 물티슈를 가져오고 쓰레기를 버리는 심부름도 척척 해낸다. 아울러 속상하면 토라져서 방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눈물 없는 연기용 울음을 큰 소리로 내뱉기도 한다.




다만, '사랑해요'라는 말은 아직 말로 하기 어려웠나 보다. 내가 "사랑해요"라고 말하면 둘째는 수줍게 손가락 하트만 뿅 날리고 말았다.




모쪼록, 요즘 둘째를 보면 전에는 마냥 아기 같았는데 이제는 불쑥 컸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를 낳았을 때만 해도 둘째 육아는 뭔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첫째에 비해 둘째 아이에게 걸음을 맞춰주지 못했다.



언니의 하루 일정에 맞춰 나가고 기다리다 데려오고, 숙제나 이벤트 같은 언니의 이슈에 먼저 대응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 일주일, 한 달이 지났다. 어느 순간 내가 정신을 차려 육아의 축이 기울어짐을 알았을 때면, 둘째는 혼자 알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게 놀이든 잠이든 뭐든.  



오늘도 둘째 아이는 언니 등원 시간에 맞춰 ‘혼자’, ‘스스로’  양말을 척척 신고 장화를 신은 채 현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양말을 발바닥과 발등을 거꾸로 신었지만, 순진무구한 그 모습에 그저 웃음이 나왔다.



이토록 씩씩하기도 하고 거룩하기도한 짠함은 참으로 새롭다.  느낌은 나이가 들어도 옹졸해지는  마음을 키워주고, 급급한  마음의 속도를 이완하는 작용을 한다.   



둘째 아이의 말과 성장을 떠올리다 보니, 올해 들어 언니와 함께한 시간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약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둘째가 어려서 첫째에게는 마땅한 놀이 동료가 되지 않았는데. 걸음마를 하고 웅웅 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니 언니와 함께 노는 시간의 질이 좋아졌다.



아이 둘은 소꿉놀이를 하고, 유치원 놀이를 하고, 카페 놀이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놀잇감으로 자기들끼리 즐겁고 또 싸우기도, 화해도 하며 놀이를 진행한다.



얼마 전에는 둘째가 좋아하는 책을 가져와 언니에게 읽어달란다. 간단한 낱말책은 자신 있게, 조금 문장이 많아지면 차근차근, 동생에게 읽어주는 모습이 기특했다. 동생은 나름대로 경청하며 언니의 말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 같았다. 한 권이 끝나자마자 “또~ 또~” 이러면서 언니를 조른다. 언니가 상냥 모드면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장면은 파국으로 끝난다.



이 레퍼토리가 여러번 반복 끝에 내린 결론은 그래도 언니의 조력 덕분에 둘째의 세상은 더욱 커져간다는 점이다. 그중 백미는 언니가 전한 노래였다.



얼마 전 첫째는 유치원에서 동요 발표회를 마쳤다. 첫째는 발표회를 앞두고 틈만 나면 본인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몇 번이나 악보를 체크를 하면서 노래 연습을 했었다. 그 음악이 동생에게도 전달이 되었던 모양이다.



노래 가사 중에 ‘싱그러운’ ‘쑥쑥’ ‘이 세상에~’  마지막 가사는‘엄마 사랑해요.’라는 노랫말*이 있었다. 둘째도 멜로디에 따라 흥얼대더니, 언니의 노래 지도가 중간중간 이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첫째가 나에게 달려왔다.



“엄마! 나 사랑이 노래하는 영상 찍고 싶어.”

그래, 해봐라.


첫째는 내 핸드폰으로 영상을 촬영하면서 노래를 알려줬다. 둘째는 언니의 지도에 맞춰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물론 딴짓도 많이 했다. 어느덧  노래의 마지막 부분이 나왔다.


첫째가

“사랑아! ‘엄마 사랑해요’ 한 번만 말해봐.”

그러더니


둘째가

“어엄마아~ ㅅㅑ ㄹㅑㅎㅐ에요오.”

우리 둘째가 사랑해요.라는 말을 해내는 순간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날 밤 둘째는 나에게 이불을 덮어줬다. 그리고 잘 자고 사랑한다는 나의 인사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ㅅ ㅑ ㄹ ㅑ 해.”



네가 태어나고 2년 동안은

말이 아닌 모든 몸짓으로 너의 이야기를 알아챘었다.

너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아맞히고

때론 빗나가기도 하면서

네 눈과 표정, 몸짓에 귀를 기울였었다.

설령 언니의 말에 먼저 응답하는 순간이 많았더라도,

네가 눈에 밟히지 않는 순간은 없었다.



너의 두 번째 생일 즈음,

하나씩 뽑아내는 너의 목소리에 웃음이 나고

너의 말소리에 감동을 느꼈다.

네가 담아갈 마음의 그릇에

네 두 살적 얻은 나의 행복을 늘 간직한다면

그 또한 커다란 기쁨이 될 것 같다.




* 곡명 : 이 세상의 모든 것 다 주고 싶어

  작곡 : 강동수, 작사 : 정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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