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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범 Mar 09. 2023

사랑답다는 것

입으론 생존을 눈으론 애정을 

“내가 나를 낮추잖아? 그럼 남들도 나를 낮춰서 보게 돼.”


버스 안에서, 챙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핸드폰을 이래저래 만지작거리는데 들리는 문장이었습니다. 바로 뒷자리에서 대화를 나누기에 고개를 돌려 볼 수 없었으나 대략 제 아버지 또래의 부부가 나누는 대화 같았습니다. 어느 부부 동반 모임에서 막걸리 한 잔을 걸친 뒤 아내분이 남편분을 꾸짖듯 이야기하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핸드폰을 만지는 척하며 조용히 대화에 집중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당신이 ‘형님, 형님’ ‘맞습니다 맞습니다’하면 당신을 얕본다니까? 만약 당신과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으면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고, 선을 넘으면 그 부분도 정확하게 지적을 해줘야 해.”


아내분의 목소리에 분함이 담겨있었습니다. 


“어찌 됐든 사회는 경쟁이야. 사람들은 친절하면 호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그러니까 당신부터 지켜. 어차피 당신이 잘 해준다고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니깐? 생존하고 경쟁한다고 생각해.”


그 말을 끝으로 부부는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니 부부는 이미 길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등산 가방을 맨 채 흐느적 걸었고, 보라색 코트를 걸친채 등산용 운동화를 신은 아내는 남편의 팔을 꼭 붙잡은 채 걸었습니다. 오래 기억에 남는 모습입니다. 입으로는 생존을, 눈으로는 애정과 연민을 말하는 게 왠지 '사랑'다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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